압축성장에 짓눌린 우리 시대 아버지의 ‘가출’을 그리다… ‘소금’ 펴낸 박범신씨
입력 2013-04-15 19:45 수정 2013-04-15 22:43
“옛날엔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자본의 메커니즘에 자식을 맡겨놓고 있지요. 시쳇말로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대인 것이죠. 가부장적 시대의 권위가 1990년대에 다 해체되었으니 자식들도 아버지의 책임과 의무를 나눠져야 하는데도 그건 안 되고 아버지가 오히려 소외받는 시대가 아닐까요.”
가족으로부터 소외받는 우리 시대 아버지상을 부각시킨 신작 장편 ‘소금’(한겨레출판)을 낸 소설가 박범신(67·사진)씨가 15일 털어놓은 소회이다. 2년 전 서울을 떠나 고향인 충남 논산에 집필실을 마련한 그는 이날 서울 태평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논산에서 쓴 첫 소설인 동시에 등단 40년을 맞아 쓴 40번째 작품”이라고 이 소설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소금’은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의해 상처받은 한 아버지의 가출을 그린 작품. 아버지가 된 그 순간부터 자식들을 위해 ‘빨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선명우의 삶을 통해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고단한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주인공은 1951년생입니다. 자의적으로 산 적이 없는 세대인 동시에 절대빈곤과 경제개발 등 위로부터의 거대담론에 짓눌려 살아온 세대이죠. 그 세대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의 부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자식들은 이런 경제적인 뒷받침에 의한 편의성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솔직히 ‘소금’은 20∼30대 젊은이들이 읽기를 바라며 작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애비의 마음엔 투자자의 마음이 있는 것 아니냐”며 “요즘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감사할 줄 몰라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40번째 소설을 출간한 심정에 대해 그는 “원래 난 비장한 작품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비장은 알아주지도 않고 감동도 주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비장이 감동이 되지 않는 시대에 40번째 소설을 낸다는 딜레마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애 한 번 한 것처럼 지난 세월이 다 지나갔네요. 내 나름의 문학 순정주의 같은 게 있는데 아마도 다음 작품에서 새로운 모색을 담게 될 것 같아요. 소설에게만은 내 나잇값을 지키고 싶어요.”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