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판짜는 금융권… ‘행장→지주회장’ 직행 또 나오나

입력 2013-04-15 18:38 수정 2013-04-15 22:28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사의표명으로 박근혜정부의 새로운 금융권 판짜기가 본격 시작됐다. 우리금융과 함께 오는 7월 임기가 만료되는 KB금융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후보에 친(親)정권 인사들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계열 은행장의 지주회장 ‘직행’ 사례가 잇따라 나올지 관심이다. 금융지주체제가 출범한 지 12년째를 맞고 있지만 그동안 은행장이 지주회장에 바로 오른 사례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한 번뿐이다. 정권 입맛에 맞는 핵심 실세들이 지주사 회장 자리를 독점해오다시피 했다.

당장 시험대에 오르는 곳이 우리금융이다. 우리금융은 정기 이사회가 열리는 오는 23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주주총회를 여는 6월 10일 회장 선임을 의결할 예정이다.

현재 이 회장 후임으로 이덕훈(64) 키스톤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와 이종휘(64) 신용회복위원장, 이순우(63) 우리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3명 모두 우리은행장을 지냈거나 현직에 있어 내부 출신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일부 ‘모피아’ 출신 인사들이 차기 회장으로 꼽히고 있다.

일단 최대 현안인 우리금융 민영화에 뛰어들기 위해 사모펀드를 세웠던 이 대표가 먼저 주목받는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경제학과 총동문회 초대 회장을 맡은 ‘서강학파’로 지난해 만들어진 서강바른금융인포럼(서강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장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오를 경우 우리금융 사상 첫 ‘행장에서 지주회장 직행’ 사례가 된다. 지주 수익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우리은행)의 수장인 만큼 그룹 상황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적응기간 필요 없이 민영화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점도 이 행장에게 유리하다.

정부 안팎에서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지주사 회장에 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5일 간부회의에서 “금융지주체제는 시너지 효과와 함께 리스크 전이를 막는 효과가 있지만 모든 금융회사가 지주사로 몰려가는 쏠림 현상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는 얻지 못한 채 지주사 덩치만 커지다 보니 특화모델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지주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경영을 맡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장의 지주회장 ‘직행’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모피아 낙하산’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런 관행을 깬 성공 사례는 김정태 회장 외에도 지난 정권에서 사실상 지주회장 격인 IBK기업은행장에 오른 조준희 당시 기업은행 전무가 대표적이다. 조 행장이 ‘모피아’를 제치고 내부 승진한 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경영정상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물론 자체 수익성도 급성장했다.

또한 우리금융 회장 인사는 향후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보여주는 ‘가늠자’다. 당장 KB금융그룹이 영향권 안에 있다.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어윤대 회장의 후임을 뽑는 회추위가 이달 말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외부 낙하산이 내려올지, 내부 인사가 올라갈지가 최대 관건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