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직업 무시한 ‘묻지마 혜택’ 수술
입력 2013-04-15 19:03
“저는 다리는 비록 불편하지만 두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교수로 일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체노동을 한다면 저보다 등급이 낮은 3급 장애인이더라도 더 많은 서비스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2급인 제가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3급은 받을 수 없습니다.”
‘2급 장애인’으로 등록된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직업이나 소득 수준은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장애인 등급제의 폐해이자 낭비”라며 “교수인 내게 2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철도요금 할인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 왜?=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장애 등급을 기준으로 운영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1∼6급으로 장애 등급을 판정하면 개별 장애인은 시·군·구 등에 서비스를 신청한다.
현재 정부 및 공기업이 제공하는 장애인 관련 복지제도 중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 지원,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 건강보험료 경감 등 14개는 장애 등급에 따른 제한이 있다. 이를테면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은 1∼3급, 여성 장애인 출산비용도 1∼3급에게만 신청 자격을 주는 식이다.
주요 서비스가 등급에 따라 운영되다보니 서비스가 엉뚱한 곳에 제공되는 폐단이 속출한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직업을 가지고 휠체어를 탄 1급 장애인 A씨와 손 장애를 가지고 있어 서류작업에 도움이 필요한 4급 장애인 B씨. 활동보조 서비스가 절실한 건 B씨지만 B씨는 1∼2급만 대상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인권침해 소지도 지적돼 왔다. 박인용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대표는 “1급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는 장애인들에게는 ‘나는 안돼’라는 좌절감을 많이 안겨줬다”고 말했다.
◇폐지되면 어떻게=폐지의 큰 방향은 정해졌지만 지난 25년간 장애인 복지제도가 등급제를 토대로 발전해온 만큼 대안을 만드는 작업이 간단치는 않다.
등급 제한 규정이 전혀 없는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경우에도 의무고용제를 위반했을 때 고용주에게 물리는 부담금을 ‘등급’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등급제 폐지 후에는 관련 법규가 줄줄이 바뀌어야 한다. 등급 폐지에 따라 수혜자의 증감 및 예산 추계도 이뤄져야 한다.
정충현 장애인정책과장은 “자칫 잘못 제도를 손대면 오히려 혜택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은 “현재 등급 판정 체계를 유지하되 사회문화적 요인을 고려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추가하고 서비스 전달체계를 원스톱 방식으로 개편해나간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