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09년 북핵 위기때 홍콩은행에 돈줄 죄라 압박”

입력 2013-04-15 18:20

‘그때를 알면 지금이 보인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을 했던 2009년을 전후해 숨 가빴던 막후 외교전의 내막이 드러났다.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당시 미국 외교전문들은 최근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미국의 전방위 압박 방식과 관련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번에 공개된 미 국무부 1급 기밀 문건들은 북한 도발에 미국이 치열한 정보전과 함께 ‘돈 줄 틀어막기’에 주력했음을 보여준다.

국무부가 2009년 7월 31일 36개국 주재 미 공관과 유엔 기구에 보낸 문건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관련 정보수집을 촉구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관련한 북 당국자들의 인적사항과 성향, 행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평양 주재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해 유엔의 식량지원 현황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과 실상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한 점도 눈에 띈다.

홍콩 주재 미 총영사관의 같은 해 7월 10일 보고 문건에는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이 홍콩금융관리국(HKMA)의 조셉 얌 치쾅 초대총재를 만나 북한이 거래를 시도한 홍콩 은행들과 무역회사, 개인들에 대해 대책을 논의한 내용이 나온다. 조셉 얌 총재는 레비 차관에게 적극 협조를 약속하며 미 정부가 홍콩 은행들과 직접 접촉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특히 100달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조셉 얌은 홍콩 정부가 1000홍콩달러 위폐 유통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놓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16일 문건에는 레비가 마이클 진크 홍콩 광동개발은행(GDB) 총재와 만나 북한 자금이 GDB의 네트워크에 유입된 정황을 논의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도 있다. 진크 총재는 자금 동결의 사전단계로 북한 계좌 차단에 대한 협력을 약속하면서 GDB가 다른 중국 국영 은행들에 비해 재량권이 많다는 사실을 레비에게 강조했다.

이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이후 북한이 홍콩을 대안으로 물색하던 정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미국은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 북한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던 모습도 보인다. 국무부는 2008년 8월 5일 북한 고려항공에 대한 감시와 검색강화를 요청했다. 북한 정부가 평양에서 미얀마 만달레이를 거쳐 이란 테헤란을 오가는 부정기편으로 탄도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들을 수송하고 있다는 첩보가 등장한다. 최근 북한이 고려항공을 이용해 시리아 정부에 무기를 공수했다는 의혹과도 비슷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현재와 다를 바 없다. 국무부가 2009년 3월 30일 중·러 대사관에 가능한 한 최고위직의 주재국 외교부 인사와 접촉해 북한 압박을 설득하라는 문건을 보냈다. 미국은 러시아에 직통 ‘핫라인’을 개설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의 군사 협력을 통한 대응도 분주히 전개됐다. 특히 호주가 군사지원에 적극적이었다. 2009년 6월 26일 호주 주재 대사관 문건에 따르면 존 폴크너 당시 호주 국방장관은 정찰기를 말레이시아 버터워스 공군기지에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앞서 마이클 페줄로 호주 국방차관은 호주군이 동맹국 탄도탄 방어를 위한 통합훈련인 ‘민첩한 거인(Nimble Titan)’에 참가하는 것 이외에 ‘가시거리 외 레이더(Over The Horizon Radar)’ 설치와 이지스함 배치, 공중 전력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 구축 등을 추진 중이라고 미국 측에 밝혔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