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의 기적-기고] 이름도 빛도 없이 순교각오 오지서 복음전해

입력 2013-04-15 17:33 수정 2013-04-15 17:47


처음 인도네시아에 간다고 했을 때 수많은 섬이 있는 나라이기에 좋은 자연경관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굶주림에 고통받는 현지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곳은 국민의 90%가 무슬림으로 복음의 불모지였다.

먼저 오지 섬 숨바를 방문했다. 현지인들조차 가기를 꺼려하는 그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현지인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만났다. 순교를 각오하고 숨바섬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들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임마누엘교회의 유누스 목사의 한 달 사례비는 한국 돈으로 500원에서 600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녀가 7명이나 있는데도 사례비를 거의 받지 못한 채 아무런 불평 없이 20년간 사역을 하고 있었다. 같은 목사로서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숨바섬에서 두 번이나 허물어진 교회를 봤다. 가난한 성도들이 정성을 모아 건축헌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벽돌로 짓지 못하고 나무와 나뭇잎을 엮어 초가집 같은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몰아친 폭풍에 교회는 힘없이 주저앉았다고 한다. 아직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교회의 무너진 상황을 설명해주던 성도들의 슬픈 눈망울이 생생하다.

수도 자카르타 한센인 마을을 방문해 아버지와 구걸을 하는 안띠까라는 아이를 만났다. 축구에 재능이 많은 안띠까는 학교에서 축구선수로 선발됐지만 축구화가 없어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가난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축구화와 축구공을 선물했다. 안띠까는 그동안 선교사님도 보지 못했다는 환한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말랑 지역의 UKCW(기독종합대학)를 방문했다. 말랑 지역의 유일한 기독교 대학이었다. 십수년 전 많은 기독교 학교가 경제적 난관으로 이슬람으로 넘어갔고, 유일하게 남은 이 기독교 학교를 함춘환 선교사 부부가 맡아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85만명의 무슬림 학생 중 기독학생 수는 300명 정도였다. 학교의 재정난으로 존폐의 위기를 겪지 않고 학원복음화의 산실이 되길 기도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났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밝은 미소, 순수하고 열정 있는 신앙을 통해 인도네시아 땅에서 희망을 보았다.

성은교회 허원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