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정황 포착했나…청, 6시간만에 ‘북한 대화 거부’ 결론
입력 2013-04-15 02:25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자 고심 끝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이 “교활한 술수”라며 반발했을 때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심야에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가 북측의 구체적인 도발 움직임을 포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조평통 대변인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인 14일 오후 3시30분 통일부 당국자는 “‘대화 여부는 우리 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한 내용 등을 볼 때 북한이 사실상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고 너무 단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같은 입장이었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했던 차분한 대응 기조로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불과 6시간이 지난 오후 9시30분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 조평통 대변인 언급 관련 정부 입장’이라는 긴급 브리핑을 갖고 북측 반응을 ‘대화 거부’로 규정한 박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한 외교안보라인은 오후 내내 회의를 열고 북측 입장이 나온 배경을 지속적으로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안보실장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논의 상황은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정부는 논의 끝에 북한이 명확히 대화를 거부했다고 결론내렸다. 북측이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 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발에 앞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로 해석했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국회 외교통일위·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북한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고, 같은 날 류길재 장관도 성명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이와 관련, 북측이 제기하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여당 수도권 원외당협위원장, 민주통합당 지도부 등과의 식사자리에서 연일 북측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지만 끝내 거절당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전쟁 위협 속에서도 먼저 대화를 제의한 파격을 선보였지만 비난이 섞인 입장이 돌아오면서 한반도에는 암운이 한층 짙어지게 됐다. 오히려 대화 제의 이전보다 긴장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개성공단을 두고 박 대통령은 “입주기업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인도적 입장에서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명박정부의 기본적인 대북 입장으로 북측과 내내 갈등을 빚었던 ‘선(先)조치 후(後)대화’와 유사한 스탠스다. 이후 북한은 도발을 일으키거나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감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