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獨 청소년들 꿈은 개성 넘친다

입력 2013-04-14 18:03


독일 청소년들의 꿈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과는 달랐다.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들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대학 입학이 미래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 우리 청소년과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달 15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빌레펠트시(市) 중심가 피자헛에서 소피 호프만(14·사진 오른쪽)을 만났다. 인문계 중등학교(김나지움) 8학년생이다. 소피는 장래 희망이 부동산 중개인이다.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좋아서 그 일이 하고 싶단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꼭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 대학 졸업장 없이도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성적 증명만 있으면 된다. 아비투어는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대입에 필요하지만 직업을 얻거나 직업교육을 받을 때도 쓰인다. 소피는 2∼3년 후 진학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소피는 축구광이다. 여자축구 선수가 돼 볼까도 생각했었다. 지역 청소년 여자축구팀 ‘힐레 고센’에 소속돼 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다.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면 오후 1시인데, 주로 축구 연습을 하거나 숙제를 한다. 그렇지만 축구 선수의 꿈은 접었다. “나이 들면 하기 힘들잖아요. 여자축구 선수는 남자들과 똑같이 해도 돈을 덜 벌어요.”

같은 반의 엘라 일리크(14·사진 왼쪽)는 항공기 엔지니어가 꿈이다. 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아비투어, 대학 공부, 직업교육이 필요하고, 범죄자가 아니어야 해요”라고 했다.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항공 관련 일을 할 수 있다는 정보는 빌레펠트시 고용지원청에서 알아냈다. 고용지원청은 학생들에게 진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엘라는 목표 대학도 이미 정했다. 항공기 설계와 조종을 함께 배우길 원하는데, 둘을 모두 가르치는 곳은 아헨공대뿐이다. 엘라의 어머니는 “진로는 늦게 결정하면 좋지 않다”며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들의 반 친구들도 제각각 개성 있는 꿈을 꾸고 있다. 동물병원 원장, 문신사(文身士), 식재료 관리·분석자, 심리학자, 배우,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다양하다.

우리 나이로 중학교 2학년인 독일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을 이처럼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한 진로교육 덕택이다. 어떤 직업이 있는지,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학교와 사회가 일찌감치 알려주고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과 지역사회는 청소년들에게 2∼3주씩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청소년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의 시간표도 함께 짠다. 소피는 “대학을 가지 않고 직업교육을 받으면 22세에 부동산 중개인이 돼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엘라도 “27세에는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겠죠”라고 말했다.

빌레펠트=글·사진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