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고구려비 조성시기 밝힐 ‘정묘’글자 있나 없나, 한·중 첫 공개토론
입력 2013-04-14 17:34 수정 2013-04-15 02:44
‘동북공정 논란’ ‘가짜설’ 등으로 학계 이목이 집중된 이른바 ‘지안(集安) 고구려비’를 놓고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공개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해 7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에서 발견된 고구려비는 올 1월 국내 학계에 존재 사실이 알려졌다.
13일 고려대에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열린 ‘신발견 지안 고구려비 종합검토’ 학술회의는 200석이 넘는 강당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중국 측은 건립 시기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정묘(丁卯) 탁본’ 존재에 대해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취해 학계를 헷갈리게 했다.
◇“불리한 학술게임… 공정한 룰을”=한국 학자들은 비석과 탁본 등 원자료를 중국 측이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집중 성토했다.
토론에서 질의자로 나선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비석도, 탁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 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낸 것 자체가 놀랍다”며 “공정한 게임이 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회를 본 노태돈 서울대 교수가 “그 얘기는 그만 해달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지안 고구려비는 현재 지안박물관 1층 로비에 옮겨져 있다. 13종의 탁본이 만들어졌지만, 국내 학자에게는 탁본 사진만 제공됐다.
◇시기 논란 핵심인 ‘정묘’의 진실 오리무중=다양한 탁본이 나돌면서 판독을 놓고도 중국 학자 사이에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중국 전문가들은 지안 고구려비에서 170여자를 판독해 낼 수 있지만 20여자는 논쟁 여지가 있어 유보키로 했다. 156자만 대외 공표키로 했다. 하지만 발표자로 나선 쑨런제(孫仁杰) 지안시 박물관 연구원은 166자를 토대로 장수왕(394∼491) 조성설을 제기했다. 주 교수는 “공식 판독 글자 외의 글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학자로서 신중치 못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탁본 중 ‘정묘(丁卯)’라는 글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린다. 427년에 해당하는 정묘년은 장수왕 조성설의 근거가 된다. 앞서 장푸유(張福有) 지린성 사회과학원 부원장은 지안 고구려비가 장수왕 때인 427년 건립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발표자인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사범학원 교수는 “여러 탁본을 보았지만 정묘라는 글자가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쑨런제 연구원은 자신의 장수왕 조성설 근거로 ‘정묘’라는 연도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장푸유 부원장) 그분은 탁본 판독의 권위자”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사석에서는 ‘정묘가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정묘’의 판독 유무는 학계의 초미 관심사다.
학술회의에서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 등 한국 측 참가자 6명은 모두 광개토대왕(374∼413) 조성설을 제기했다. 중국 연구팀의 공식보고서도 광개토대왕 때 건립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연구팀의 겅 교수는 광개토대왕, 쑨 연구원은 장수왕 조성설로 상이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중국 참가자들은 ‘동북공정 이용설’ 등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해서인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사양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