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상정] 바둑과 저작권
입력 2013-04-14 18:57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중국의 바둑 영웅 녜웨이핑 9단에 대한 기사가 났다. 그것도 정치면에 났기에 궁금하여 읽어보니 녜웨이핑 9단이 시진핑 주석과 친구이며, 문화혁명시절에 모두 반동으로 몰려, 같은 처지에 있는 류웨이핑과 더불어 ‘3핑’으로 불릴 정도로 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세계 바둑계를 석권했던 녜웨이핑 9단에게 그런 인연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러한 녜웨이핑 9단에게 세계바둑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제1회 응씨배에서 3대 2로 승리하여 한국 바둑을 세계 중심으로 끌어 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조훈현 국수다.
지금은 서서히 중국세에 밀려 우리의 바둑세가 조금 주춤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한국의 바둑이 이 정도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어라 해도 조 국수의 공이 크다고 본다.
棋譜는 대국자 기품의 표현물
마침 조 국수의 홈페이지가 있다기에 방문했더니 특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에세이가 있다. ‘기보(棋譜)의 저작권’이라는 2002년에 쓴 것이다. 내용인즉, 자신의 조카가 저작권 침해를 당한 사실, 별다른 효과적인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한 사실, 그리고 기보의 저작권에 대한 단상을 적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문구로 끝을 맺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고객들이 부르는 가요 한 곡마다 소정의 저작권료가 발생해 작곡가와 작사가들한테 돌아간다고 하는데 수많은 바둑사이트와 바둑서적에 등장하는 기보 한 판마다 정당한 저작권료가 주어진다면 바둑인들의 환경이 상당히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사실 바둑의 저작권 문제는 저작권 연구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다. 나와 같이 바둑의 내용(기보)에도 당연히 저작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기보는 우연의 산물로서 창작성이 없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기보를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피상적 견해라고 본다. 손 따라 두는 하수들의 바둑이라면 몰라도 전문기사들이 두는 한판의 바둑에는 기사의 개성인 기풍이나 철학이 나타나 있다.
모양을 중시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전혀 개의치 않는 기사도 있고, 세력을 중시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실리에 치중하는 기사도 있다. 불리해도 끝까지 가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선선히 돌을 거두는 기사도 있다. 화살같이 빠른 바둑도 있고, 물 흐르듯 유장한 바둑도 있다. 오선지 위에 표현해야 하는 음악과 같이 일정한 제한을 받지만 모든 것이 대국자의 기량과 기품의 표현이다.
조 국수의 이야기대로 작가가 작품으로 말하듯 기사는 기보로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둑의 내용이 기보에 기록되면 그 내용이 전달되고, 이를 통해 바둑의 내용을 감상하고 기도 문화를 향상시킬 수 있다. 예전부터 존재했던 바둑이 저작권법의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은 과거에는 기보의 복제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보호해 줘야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사실 저작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보호대상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속기사의 속기록도 저작권법으로 보호했다. 물론 녹음기가 나온 이후에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대국보가 TV나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재생되며, 이를 통해 사업을 영위하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그 사업의 원천에 대해서 일정한 보답을 하여야 한다.
복제할 가치가 있다면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명제는 바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 사이 서자 취급을 받아왔던 바둑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면 우리 저작권법도 금기서화(琴棋書畵)의 사예(四藝)를 모두 아우르는 교양 있는 법률이 될 것이다.
이상정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