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⑦ 꿈을 이루는 진로 교육
입력 2013-04-14 17:25 수정 2013-04-14 17:26
정부, 진로교육 책임… 수백개 ‘직업 프로그램’ 가동
게잠트슐레(종합중등학교) 진로 교육 현장
지난달 15일 오전 8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빌레펠트 고용지원청. 종합 중등학교(게잠트슐레) 8학년생 25명이 한 남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남자는 고용지원청 소속의 직업상담사인 디르크 스원케씨. 학생들에게 ‘진로탐색 프로그램’ 사용법을 얘기 중이다.
“학생은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동물심리학자요.” “아, 그건 진로탐색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는 직업이에요. 직업교육보다는 대학교육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독일에서 학생 대상의 진로교육은 학교 밖에서 이뤄진다. 빌레펠트 고용지원청은 연방정부가 운영한다. 연방정부는 직업 수백 개를 담은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각 지역 고용지원청에 제공한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 하에 고용지원청을 찾아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검색한다.
이날 진로교육에 참석한 학생들도 스원케씨에게 약 30분간 설명을 들은 뒤 컴퓨터가 설치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마렌 바이스(13·여)는 턱 교정 보조 업무에 대한 직업을 검색했다. 바이스는 “치아교정을 하러 병원에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남학생 사샤 빙켈(14)은 전문 창고관리자를 컴퓨터에서 찾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직업소개만 담고 있지 않다. 어떤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꼭 대학을 가야 하는지, 직업교육을 받는 동안 보수는 얼마인지, 비슷한 다른 직업은 무엇인지 등 특정 직업에 관한 내용이 총망라돼 있다.
아직 장래 일을 정하지 않은 학생도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는지 등을 답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어울리는 직업을 추천해 준다.
학생들은 빌레펠트에서 북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보르크홀츠하우젠시(市)의 피터 아우구스트 벡스티에겔 게잠트슐레 소속이다. 학교명은 20세기 초반 활동한 유명 표현주의 화가의 이름이다. 게잠트슐레는 대학진학과 직업교육 과정을 모두 갖춘 종합 학교다. 진로 분리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학교 형태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진학 준비와 직업교육 준비로 진로가 분리된다. 그렇지만 게잠트슐레에 들어가는 학생의 성적은 그리 높지 않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거의 김나지움 진학을 원하기 때문이다.
학생을 인솔한 담임교사 레나테 기어스케마이어(여)는 이날이 최근 4일간 진행한 ‘진로 교육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라고 설명했다. 첫날 학생들은 이력서를 포함한 진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둘째날은 산업박물관을 견학했고, 셋째날은 기업체를 방문했다. 기어스케마이어 교사는 “직업의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지만 부모가 모든 정보를 줄 수 없다”면서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알도록 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독일 학교마다 시기와 방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일년에 한두 차례 1∼2주일 직업세계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중등학교(김나지움)보다는 직업교육 과정인 직업계 중등학교(레알슐레), 종합 직업학교(하우프트슐레) 등에서 더 체계적이다.
이력서 쓰는 것도 학교에서 배운다. 체칠리안 김나지움 8학년생 소피 호프만(14)과 엘라 일리크(14)도 이력서를 포함한 진로 포트폴리오가 있다. 이를 ‘좁패스’(jobpass)로 부른다. 자기소개서와 잠재력·적성 평가 결과, 다른 사람의 본인에 대한 평가, 본인의 자신에 대한 평가, 학교 성적 등이 모두 들어간다. 한번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충해야 한다.
진로 포트폴리오 작성 방법을 가르치고 관리해주는 것은 학교 교사만이 아니다. 빌레펠트에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포트폴리오 작성을 도와주는 전문기관(레게·REGE)이 있다. 시가 100% 재정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으로, 직업교육 기회가 부족한 청소년을 돕는 게 주 업무다.
고용지원청은 특정 직업 세계를 알 수 있도록 강연을 열고 학생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최근 빌레펠트 고용지원청에서는 현직 의사와 변호사를 초청했다. 변호사는 김나지움 8학년생들에게 “법원은 주로 강자 편을 든다. 대기업과 개인이 싸우면 100% 대기업이 이긴다” “살인자도 의뢰를 받는 순간부터는 살인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등 현실적 이야기를 해줬다. 의사는 “돈 벌려고 의사하면 안 된다”며 “인체를 인체로 봐야지 감정이 섞이면 일을 못한다”고 도움말을 줬다.
빌레펠트=글·사진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 자문해주신 분들
▲패트릭 아담 독일 헤센주 교육부 국제관계 담당 부국장, 에바 두비시 홍보담당관 ▲잉예 클라인 독일 비스바덴 빌헬름 로이쉬너 종합 중등학교(게잠트슐레) 교장 ▲이나 볼테 독일 귀터슬로 고용지원청 청소년상담팀장 ▲디르크 스원케 독일 빌레펠트 고용지원청 청소년 직업상담사 ▲정수정 한국교육개발원 독일통신원 ▲금기정 독일 비스바덴 딜타이 인문계 중등학교(김나지움) 한국어 교사 ▲노유경 전 주독한국교육원장 (현 서울 원촌중 교감)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조사통계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