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착한 커피의 최후

입력 2013-04-14 18:56 수정 2013-04-14 20:09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 ‘프로젝트 141’이란 커피가게가 있었다. ‘141’은 ‘원포원’(one for one)이라 읽어야 한다. 커피 한 잔 팔 때마다 한 잔 값을 기부하겠다며 지난해 1월 9일 문을 열었다. 1.3평 작은 가게 앞에 주인은 노란색 드럼통을 놓아뒀다. 통에 물을 채우면 정확히 120ℓ가 들어간다.

아메리카노가 2000원이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커피원두 원가는 200원. “커피 한 잔 팔 때마다 200원을 유니세프에 기부합니다. 식수정화제 200원어치면 대략 120ℓ의 깨끗한 물이 생깁니다. 당신이 커피 한 잔을 사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저 드럼통만큼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됩니다.”

이렇게 ‘착한커피’로 자영업에 뛰어든 한재우(32)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고시 준비하다 군대 다녀오니 서른이 넘었더란다. 뭘 할까 고민할 때 안성기의 유니세프 TV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그걸 보며 “요즘 커피 값이면 아이 여럿 살리겠네” 중얼거리다, “내가 해볼까? 탐스슈즈처럼” 한 거다.

신발 한 켤레 팔면 한 켤레 기부하는 원조 ‘원포원’ 기업 탐스슈즈는 3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씨는 개업 때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이 가게가 살아남기만 해도 멋진 일이 될 겁니다.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프로젝트 141은 지난달 문을 닫았다. 1년2개월 만이다.

그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바리스타 학원을 수료하고 5000만원을 들여 가게를 열었다. 1.3평 권리금이 2900만원이었다.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55만원. 전기료와 수도료, 결제시스템 임대료를 더하면 매월 고정비용이 80만원쯤 됐다. 이건 재료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카페 컨설턴트는 재료비가 커피 한 잔 값의 25% 이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씨는 YMCA 공정무역 커피를 썼다. 한 잔에 보통 원두 7g을 쓰는데(‘카페 7그램’이란 프랜차이즈도 있다) 더 맛있으라고 8∼10g을 들인 원가 200원, 종이컵·홀더 150원 등 재료비를 500원선에 맞췄다.

이렇게 시작해 1년2개월간 커피 5425잔을 팔았다. 하루 13잔 꼴. 여름엔 40잔을 넘긴 적도 있고 겨울에는 두세 잔 팔린 날도 많다. 초창기 월 매출이 150만원쯤 나왔다. 고정비용과 재료비를 빼면 수입은 편의점 알바보다 못했지만 그래도 유지는 되기에, 착한가게라며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버티던 어느 날 매출이 갑자기 확 줄었다. 인근 카페베네의 할인행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숙대 앞에는 스타벅스 카페베네 할리스커피 같은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커피점이 30개쯤 있다. 대형업체들은 돌아가며 프로모션 행사를 했다. 그러면 소형 커피점은 ‘공치는’ 날이 이어지고, 그러다 망하면 새 커피점이 들어와 ‘반값’ 개업행사를 했다. 개업 71일 만에 한씨는 1000잔째 커피를 팔고 약속대로 1000잔의 커피 원가 20만원을 기부했다. 드럼통 1000개 분량의 맑은 물 12만ℓ를 누군가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기부가 이뤄진 건 폐업 때였다.

“수중에 기부할 돈이 없었어요. 6개월쯤 됐을 때 어머니께 가게를 맡기고 취직해서 월급으로 월세 냈어요. 포털 다음의 로드뷰(거리사진 제공 지도 서비스)가 6개월마다 새 사진을 업데이트하는데, 가게 앞길의 옛 로드뷰를 찾아보니 6개월마다 주변 점포들이 새 가게로 바뀌어 왔더라고요. 탈 없이 그 거리를 지켜온 건 대형 프랜차이즈와 건물주뿐인 거죠.”

한씨의 도전은 108만5000원을 기부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 자영업의 현실은 ‘착한 마케팅’도 통하기 어려움을 확인한 채.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