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獨, 진로교육 핵심인 직업 실습 프로그램

입력 2013-04-14 17:24


독일 진로교육의 핵심은 프락티쿰(직업실습)이다. 청소년들은 저학년 때는 1년에 하루, 고학년이 되면 1년에 2∼3주간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미리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실습은 학교 교육의 일부=본격적 직업실습은 15∼18세에 이뤄진다. 우리의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시기다. 본(Bonn)에 살고 있는 교포 2세 정이삭(17·김나지움 10학년)군도 오는 7월 8∼19일 직업실습을 앞두고 있다. 의료계에서 일하고 싶은 이삭군은 대학병원 안과에서 일할 예정이다.

이삭군은 작년에 약국에서 하루 동안 실습을 했다. 약이 조제되는 과정을 지켜봤고, 근처 양로원으로 약을 전해주는 심부름도 했다.

이삭군의 직업실습은 학기 중 이뤄지는 교육 과정의 일부이다. 실습 뒤에는 확인증과 보고서를 학교에 제출한다. 확인증에는 직업실습 기회를 준 기관 담당자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는 10∼15장 분량으로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적어야 한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수가 이를 성적에 반영한다.

◇이력서 보내 실습자리 구해=직업실습 기회는 학교가 알선해 주지 않는다. 어디서 무슨 직업을 체험할지는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학교는 2년 전부터 직업실습 주간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고지한다. 대부분 1년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학부모들의 말이다.

직업실습 자리는 부모의 인맥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삭군의 같은 학교 친구는 지난해 하루짜리 직업실습 때 쾰른에 있는 포드자동차 공장에 갔었다. 삼촌이 그곳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빌레펠트의 한 여학생은 물건을 파는 실습 자리를 알아보다가 아빠의 단골 양복점에서 기회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진로를 함께 고민한다.

학생들이 직접 기업체 등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학교 성적표를 보내 실습 기회를 요청하기도 한다. 학교는 ‘실습 합격’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한 김나지움 교사는 ‘이력서를 보내면 보냈다는 확인 전화를 하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라’고 말했다. 집에서 먼 곳이면 학교에서 교통비를 준다.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 있어=학생이 원한다고, 실습자리를 구했다고, 아무 일자리나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있다. 헤센주 교육부 진로교육 담당자인 앤 프리엘링그하우스는 “전기공 실습의 경우 처음에는 지켜보고 나중에 단계적으로 실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빌레펠트에선 9학년 학생은 인체를 다루는 일과 관련된 실습을 할 수 없다. 의사, 간호사 등 직업실습을 하려면 10학년이 돼야 한다. 의료 계통에서 실습을 하고 싶은 9학년생은 일반 병원 대신 동물병원을 알아보기도 한다.

직업계 중등학교(레알슐레)와 종합 직업학교(하우프트슐레)에서는 실습이 의무다. 레알슐레에서는 두 차례 실습이 이뤄진다. 1차 때는 8학년생이 참여하는데, 상업과 농업 분야의 기업체와 은행, 병원, 우체국 등을 2주 동안 하루나 이틀씩 방문한다. 직업세계를 두루 보게 해주는 것이다. 2차 실습 때는 각자 진로에 따라 실습 장소를 정한다. 2차는 9학년 또는 졸업학년인 10학년에서 이뤄진다.

하우프트슐레에서도 8학년 때 2∼3주씩 직업 실습을 해야 한다. 하우프트슐레는 9학년이 마지막 학년이어서 이때 직업 경험이 학생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직업체험 자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독일은 중등학교 단계에 성적순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하우프트슐레에는 초등학교 때 성적이 낮은 학생이 모여 있다. 기업이나 기관이 이들보다 다른 학교 출신들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5학년부터 대학원생까지 실습=독일 청소년들이 처음 직업 맛보기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인 5학년 때부터다. 이때는 하루만 실습을 하면 된다. 해마다 4월 25일은 걸스데이(Girl’s Day)다. 걸스데이는 여학생들로 하여금 1년에 하루 전자·기계 계통의 일을 체험해 보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근 보이스데이(Boy’s Day)가 생겼다. 남녀 학생 모두 이날 직업체험을 하고 확인증을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직업실습은 대학에서도 이어진다. 대학생들은 3∼6개월 정도 휴학을 하고 실습을 한다. 실습 경험이 많을수록 졸업 후 직장을 구할 때 유리하다. 의대, 법대, 사범대 등은 실습이 필수다. 공대에서는 아예 입학요건으로 8주간 실습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도 전공 분야에서 수개월씩 실습을 한다. 독일 콘스탄츠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라스 바이어는 헤센주 교육부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그는 “6개월짜리 실습이고, 이제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고 했다.

실습은 진로를 정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 해보고 싶은 일도 막상 해보면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헤센주 비스바덴에서 세 딸을 김나지움에 보내고 있는 금기정씨는 “큰딸이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는데 방송국에서 실습을 한 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본·비스바덴=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