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골드러시’ 유감
입력 2013-04-14 18:48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존 슈터가 운영하는 제재소에서 일하던 목수 제임스 마셜이 근처 아메리칸강 지류에서 사금(砂金)을 발견한다. 많은 양의 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미국 전역이 들끓었다.
일확천금의 꿈은 열병처럼 퍼졌다. 이듬해 유럽·중남미·하와이·중국 등에서 10만명이 배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며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바로 ‘골드러시’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1849년을 빗대 이 해에 이주한 이들을 가리키는 ‘포티나이너스(49ers·forty-niners)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원자 번호 79, 원소 기호 Au인 금은 화학적으로 안정돼 공기 중에서 산화되지 않는다. 금속 가운데 펴지는 성질과 늘어나는 성질이 가장 크다.
금은 ‘화폐금속(coinage metal)’이다. 오랜 세월동안 화폐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폐와 동전이라는 대체화폐가 등장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엄청난 위력을 뿜어낸다.
한국은행은 6·25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서울 본점에서 순금 1070㎏, 은 2513㎏을 군 트럭 1대에 싣고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로 서둘러 이송했다. 전쟁의 와중에는 믿을 건 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폐 대신 금을 모아 국가부도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금은 위기를 먹고 큰다. 금값이 오른다거나 금에 돈이 몰린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물론 일반 투자자도 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1년 13년 만에 처음으로 금을 사들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변형된 ‘골드러시’가 등장했다. 국제 금값이 차츰 떨어지고 있는데도 시중은행 PB센터마다 금괴를 찾는 부자 고객이 줄을 잇고 있다. 한 백화점에서 다음 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금괴를 판매하는 행사를 열자 첫날 매출만 2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근혜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기치를 내걸고 거액자산가를 겨냥하자 탈출구로 금에 주목하는 것이다. 금은 매매차익에 따른 세금이 없다. 은밀하게 보관할 수 있고, 세금 한 푼 안 내고 자녀에게 상속·증여할 수도 있다.
헌법 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세금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를 지탱해주는 받침대다. 최소한 받침대는 건드리지 말자.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