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苦에 지친 황혼… 비상구를 찾아라

입력 2013-04-12 17:49 수정 2013-04-12 21:22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는 2001년 1448명에서 2011년 4406명으로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1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연령별 자살자 수 추이를 보면 30대는 30.5명이었으나 50대 41.2명, 60대 50.1명이었고 특히 70대는 무려 84.4명에 달해 고령층일수록 자살률이 높은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우리의 급속한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노인자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의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지난 6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마련한 ‘노인자살률 1위, 그 이유와 예방책을 묻는다’ 세미나가 관심을 끌었다. 재단 창립 22주년을 맞아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소개됐고 통·반장들을 자살 방지 게이트 키퍼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자살 예방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세미나는 웰다잉 지도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워크숍, 오후 주제강연과 패널토의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눈길을 끈 것은 오전에 열린 워크숍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였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자살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노인들의 자살을 줄이기 위해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1년 6월부터 개발을 시작해 2012년 12월 완성됐다. 지난 2월 중순 강사양성교육을 처음 실시한 이후 이달 초까지 전국 16개 시·도 신규 노인돌보미 및 서비스 관리자 등 모두 2200여명을 대상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또 현재도 교육 대상 2000여명이 계획돼 있는 등 앞으로 교육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참가자들의 반응 역시 내용이나 구성이 짜임새가 있다는 호평이 많고 교육과정 이수 전후에 수강생들의 자살에 대한 인식 태도가 제고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설명이다.

서울의 노원정신보건센터 부센터장인 이은진(대진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날 워크숍에서 “자살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자살 실태를 고려한 국가차원의 자살예방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 같은 필요성에 의해 제작된 것이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이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노인 등 자살취약군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는다면 분명히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울산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인 정진홍 교수는 ‘생명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이란 첫 주제 강의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자살한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젊은이의 자살과 달리 나 스스로도 한때 ‘부럽다’고 공감한 적이 있다”면서 “역설적이게도 이 같은 죽음에 대한 부러움이 ‘내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가져다줬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러나 “죽음은 끝이기 때문에 ‘죽어버리면 모든 문제는 끝난다’는 죽음에 대한 요즘의 인식이 안타깝다”면서 “죽기를 서두르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내 삶을 완성해 가면서 노력하며 사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두 번째 주제강연자인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정신과 이동우 교수는 “노인들의 자살수행 비율은 전체인구 연령층별 평균 자살수행 비율 8대 1에 비해 4대 1로 배나 높다”며 “특히 젊은 연령층에 비해 노인들은 강한 자살수행의도를 가지고 시도하므로 성공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인들은 병고, 빈곤, 고독이라는 3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주민의 사정을 잘 아는 통·반장을 자살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문지기인 게이트키퍼로 참여하게 하고 사회복지공무원을 전진배치해 자살 고위험군을 미리 찾아내 안부전화를 하고 방문해서 체크하면 자살예방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각당복지재단 김옥라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1991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설립했다”며 “이 단체의 목적은 죽음을 미리미리 준비하게 하고 앞서 보낸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족, 친구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