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기도하는 사람들] “전쟁 소문이 늘어간다 기도 자리로 나갈 때다”

입력 2013-04-12 17:40 수정 2013-04-12 21:32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 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네…”

가스펠송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의 가사 일부다. 평화에 대한 세상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갈수록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핵, 단호한 대응, 특수전, 응징, 보복’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몇몇 외신에서는 한반도에서 최악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한다. 한반도는 지금 언제 충돌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계의 화약고가 됐다. 평화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우리 모두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할 때다. 위기에 대한 체감 정도가 달라 우리 삶이 ‘지나치게’ 평온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방아쇠가 당겨진다면 개인은 물론 민족의 운명이 180도 달라진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만약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지는 날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동화 수준’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면서 그 위기의 중대함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강한 위기 의식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이장로 고려대 교수(한국리더십학교교장)는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도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 한반도에 평화와 구원의 역사가 이어가기를 원하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이 땅의 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야훼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사무엘은 블레셋 족속과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명한다. 그곳에서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하루 종일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악과 불순종을 회개했다. 그 이후 미스바는 회개와 각성의 상징이 됐다. 이스라엘이 미스바 성회를 통해 눈물로 기도하는 그 순간 블레셋 족속이 침공을 하지만 에벤에셀, 즉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막아 주신다. 지금 우리는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나아가 이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 달라고 강청해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이 시대 한국 땅의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말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정당한 전쟁, 즉 ‘저스트 워 이론(Just War Theory)’은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도 수없이 제기됐다. 학자들은 정당한 전쟁에는 반드시 몇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먼저 그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비록 목적이 정당할지라도 마지막 방편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비폭력적인 방법이 소진된 뒤 취할 수단이기에 평화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는데도 전쟁을 치른다면 그것은 ‘저스트 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정당한 전쟁은 필히 올바른 목적을 갖고 수행돼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직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평화를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쟁이 정치적·외교적·주변 역학적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을 하는 것이 더 많은 희생을 막는 수단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든 합당한 이유 때문에 정당한 전쟁을 치르더라도 쌍방간의 희생자는 최소화해야 한다.

‘저스트 워’에 대항하는 이론이 ‘저스트 피스메이킹(Just Peacemaking)’이다. ‘저스트 피스메이킹’의 저자인 풀러신학교의 글렌 스타센 교수는 “모든 고려를 떠나, 어떤 이유에서도 전쟁은 불가하며 오직 평화를 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크리스천들은 주도적 개혁을 위해 솔선수범(Transforming Initiative)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악을 대할 때 보복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앞서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이 성경의 주 메시지는 평화요 사랑이다. 성경에 전쟁을 옹호하는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평화와 사랑을 강조한 구절의 수와 비할 바 아니다. 따라서 이처럼 위급한 상황일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비탄과 분노, 적개심을 누르고 ‘오직 평화를 만드는 길’을 걸어갈 수 없는지를 기도 가운데 생각해야겠다.

백석대 김진섭 부총장은 역대하 7장14절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 소리를 하늘에서 듣고 이 땅을 고쳐주실 것”이라면서 “우리 모두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기도의 자리에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주 하나님은 이 땅을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다. 그 주님께 지금 당장 전쟁만은 막아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민족의 운명이 나의 기도,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다는 각성이 절실한 때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