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성과전쟁만이 판을 치는 삭막한 직장에서도 인간미 넘치는 직원 하나만 있으면 분위기가 바뀌는 법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들을 ‘오피스맘(office mom)’이라고 부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오피스맘’을 “다른 직원들의 생일을 챙기고 서랍 안에는 진통제와 티슈를 준비해 놓고, 동료들에게 업무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직원”이라고 정의했다.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최고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직원보다도 현재의 회사들엔 오피스맘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오피스맘이 꼭 여성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은 사무실 내 여성들이 오피스맘 역할을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오피스맘은 관리자급에서 많고, 오피스맘형 고위임원도 상당수 존재한다. WSJ는 개인 업무공간이 사라지고 개방된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오피스맘의 존재도 커졌다고 분석한다. 개인주의 성향으로 똘똘 뭉친 젊은 사원들 사이에서도 엄마처럼 챙겨주는 다정한 선배의 존재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실제 오피스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는 어떨까. 사무용품업체 ‘레벤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주디 게일(66)은 동료직원들을 챙겨주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모든 직원의 생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날이 오면 케이크를 굽고 직원 자녀에게는 장난감을 선물한다. 갑자기 추워질 때를 대비해 항상 티백을 준비해 뒀다가, 몸을 떠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챙겨준다. 젊은 직원들에겐 말 그대로 ‘엄마’ 같은 존재다. 게일의 동료 데나 멀렌(44)은 “주디는 기분은 물론 끼니까지 살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신발업체에서 근무하는 탈리타 피터스(37)도 오피스맘이다. 그는 20대 직원들에게 제때 밥을 먹이고 운전 중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역할을 자신의 업무로 생각해 왔다. 자연스레 동료들과 친해졌고, 심지어 개인사까지 그에게 상담하는 직원들이 늘어났다. XO그룹의 개발부장 업무를 맡은 앨리슨 번스틴(41)은 직원 생일날 컵케이크를 챙겨주는 것은 물론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게 아기 수면 훈련 요령까지 가르친다.
이들은 보통 인맥관리 목적보다는 본인이 즐겁기 때문에 오피스맘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업체에서 근무하는 파멜라 멘도사(38)는 “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성격에 맞기 때문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테이블을 주문한다든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신입직원들에게 업무나 생활에 관련된 노하우를 가르치는 일을 하길 망설이지 않는다. 신입직원 엘리사 데이비슨(23)은 “파멜라가 세금이나 의료보험 같은 복잡한 서류를 챙기는 걸 도와줬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점차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각광받고 있다. IT기업 ‘초어몬스터’를 설립한 폴 암스트롱 사장은 최근 트위터에 “오피스맘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직책을 뽑는 채용공고를 냈다. 그가 생각하는 오피스맘의 정의는 사무실 이전 때 일을 도맡아 도와주고, 회사 및 직원들의 일정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전문가들은 오피스맘이 회사에는 단순히 직원 생일을 챙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무실에 오피스맘이 한 명 있으면 막대한 돈을 들여 직원관리 및 HR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오피스맘의 존재는 사무실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어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한다. 포브스는 엘리그룹의 최고브랜드관리자(CBO) 캐롤 스미스를 인용, 오피스맘이 “직원들이 기꺼이 더 멀리 가게 하고, 충성심을 갖도록 한다”고 전했다. 이런 연유로 오피스맘들은 연봉과 승진 면에서 상당한 이점을 갖기도 한다. XO그룹 로리 리치몬드 팀장은 “오피스맘의 직원 관리 역할은 중요하다”며 “인재를 양성하는 건 핵심적인 업무”라고 밝힌다.
아직 오피스맘이라는 명칭은 정착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기업들도 직원들의 대소사와 개인적인 관심을 챙기는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한 달에 한 번씩 그달에 생일을 맞은 직원들의 생일파티를 여는가 하면, 출산휴가를 갔다가 돌아온 직원을 위해 환영 현수막을 내걸기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정해져 있진 않아도 직원 생일에 실·국별로 꽃바구니나 선물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며 “직원 경조사는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규정을 두어 관리한다”고 밝혔다.
나는 오피스맘일까 아닐까? 오피스맘은 일곱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주위 직원들의 생일을 모두 안다, 인사부서에 들어가도 될 것 같다, 구급약을 갖고 다닌다, 각종 기념일을 챙긴다, 누군가에게 급하게 필요할 수도 있는 물건(옷핀, 매니큐어 리무버 등)을 챙기고 있다, 스테플러가 어디 있는지 안다, 직원들이 나에게 상담 받으러 온다.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체크해 보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회사에도 ‘엄마’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배려가 살맛나는 직장으로
입력 2013-04-1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