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남도영] 제대로 분노하기

입력 2013-04-12 17:33


지난 2월 95세로 타계한 레지스탕스 출신 프랑스 정객 스테판 에셀은 2010년 40쪽짜리 책 ‘분노하라’를 내놓았다. 그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와 국민을 돌보지 않는 정부, 무한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 체제에 분노하라고 외쳤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 멸시, 문화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권고했다.

우리 사회는 에셀의 조언이 필요 없을 만큼 ‘분노 사회’다. 정치권력에 대한 분노는 일상화된 지 오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분노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가진 자와 사회지도층에 대한 분노도 위험 수위다.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의 행동과 상관없이 인격 살인에 가까운 대중의 분노에 직면한다.

분노가 지도층에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분쟁은 살인을 불러오고, 과잉충동범죄가 언론지면을 장식한 지도 오래됐다. 학교에서는 약한 아이들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집단 따돌림’은 무한 성적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자신들의 억눌린 분노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분노하기’의 전문가였던 강준만 교수조차 몇 년 전 언론인터뷰에서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 분노가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임계점, 적정수준을 넘어섰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언론과 인터넷과 일상생활에서 목격하는 분노들은 에셀이 권고했던 분노가 아니다. 차라리 병리학적 현상, 질병에 가깝다. 특정 대상에 분노를 쏟아내고, 이를 통해 일시적인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분노를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현대사회는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강요하고, 경쟁에서 승리할 것을 속삭이고,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의 사회가 제대로 분노할 수 있는 능력마저 없애버리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분노가 감정의 발산에 그치면, 분노는 짜증이거나 신경질일 뿐이다.

심리학자들은 병리학적 분노를 조절하려면 적절한 운동, 주변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생성을 돕는 초콜릿도 분노 조절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초콜릿으로 우리 사회의 거대한 분노가 조절될 리 없다.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중산층 기준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다양한 기준이 있었지만, 불의에 대한 분노가 공통적으로 포함된 점은 인상적이었다. 프랑스는 ‘사회 정의가 흔들릴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나설 줄 아는 것’을, 영국은 ‘불의·불평등·불법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을, 미국은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신뢰성 있는 기관이나 학자에 의해 중산층의 기준이 제시된 적이 없다. 학교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토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한국 사회의 ‘교양 없는 중산층’을 아쉬워했다. “듣기에는 조금 거북한 이 말은 서양의 중산층에 견주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성숙한 분노’다. 에셀은 분노의 가장 좋은 방법이 ‘참여’라고 했다.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이며, 주변을 둘러보면 분노를 정당화할 주제들이 보일 것이라고도 했다.

2013년 4월 4일 미국 뉴욕 맨해튼과 한국 서울 장교동에서는 각각 비슷한 시위들이 개최됐다. 맨해튼에서는 맥도날드 버거킹 KFC 직원들이 7.25달러(8260원) 수준인 시급을 15달러(1만7000원)로 올려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는 ‘알바연대’ 회원들이 올해 486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맨해튼 시위를 ‘화제성 기사’로 다뤘지만, 장교동의 시위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분노가 단발적인 감정의 분출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성숙해지려면, 맨해튼보다 장교동에 주목해야 한다. 편의점 빵집 패스트푸드점 커피체인점에서 만나는 지친 얼굴의 아르바이트생들의 삶에 분노하고,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분노의 방법을 모색할 때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