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자살률과 국민행복
입력 2013-04-12 17:33
사회지표들 중에서 자살률만큼이나 섬뜩하고 음울한 지표가 또 있을까.
자살률은 그 집단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척도다. 자살률이 높다는 건 그 사회가 병들었고, 절망의 끝으로 내몰린 구성원이 많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어떨까. 통계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11년 31.7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해 자살은 암(142.8명), 뇌혈관질환(50.7명), 심장 질환(49.8명)에 이어 사망 원인 4위였다. 10대부터 30대까지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2011년 자살자 수는 1만5906명. 하루 4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년 연속 1위다. 참담한 성적표다. 특히 노령인구의 자살률이 심상치 않다.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79.7명으로 전체(31.7명)의 배를 훨씬 웃돈다. 그것도 급증 추세다. ‘2차 세계대전 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한 유일한 국가’라는 자긍심은 자살률 통계 앞에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자살의 이유는 경제적 궁핍, 질병으로 인한 고통, 고립감과 실패자라는 자괴감, 막다른 골목이라는 절망감 등 제각각일 게다. 그렇다고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살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그를 그리로 내몬 건 그가 처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치솟았다. 1995년 10.8명이었으나 외환위기 여파가 최고조에 달한 1998년 18.4명으로 급상승했다. 2001년 14.4명으로 일시 줄었지만 이후 다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 10년 만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제 양극화의 확대재생산, 쉼표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안전망 부재, 고령화의 급격한 진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짐작할 수 있는 흐름이다.
국가가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자살예방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살 예방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 노원구가 대표적이다. 노원구는 2010년 구 정신보건센터에 자살예방팀을 신설해 체계적인 자살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음건강평가’ 등을 통해 자살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을 분류하고, 전문상담사들이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이들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인구 10만명당 29.3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7위이던 노원구의 자살률은 2010년엔 25.5명(15위), 2011년엔 24.3명(21위)으로 줄었다. 서울시도 지난 주 자살예방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다양한 예방사업을 통해 한 해 2722명(2011년 기준)인 자살자 수를 2020년까지 절반인 1361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노원정신보건센터 전현구 자살예방팀장은 “정부 기관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면 자살률은 얼마든지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고위험군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접촉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지적했다. 또 자살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관련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 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인데도 지난해 정부의 자살예방 예산은 23억원이 채 안 된다. 이웃 일본(연간 3000억원 가량)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비전으로 제시했다. 그게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더 이상 내버려 둬선 안 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