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믿음의 세계로

입력 2013-04-12 17:56


다산 정약용은 조선에 근대화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하던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에 그 당대를 지배하던 사상인 성리학으로는 더 이상 변화하는 세상 속에 유학이 추구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이룰 수 없음을 절감하면서, 경전해석과 실천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가 된 당대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벗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신론적 세계관으로 경전과 역사와 삶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산이 볼 때 원시유학에서 ‘하늘의 주재자는 오직 상제’(天之主宰爲上帝)이다. 따라서 어떤 이치가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으므로 태극은 만물의 생성에서 주재적인 권능을 가질 수 없다. 음양도 단지 빛과 어둠에 대한 현상학적인 설명이며, 물(物)의 성질이 가볍거나 무거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행(五行)이란 만물 가운데 수화토석(水火土石)과 같은 다섯 개의 물(五物)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성리학의 핵심이 되는 이기론(理氣論)이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저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며, 평생 동안 서로 다투다가 자손에게까지 넘겨 다투게 해도 끝이 없는 비실제적이고 비생산적인 형이상학적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다산이 경직된 관념이 되어 실천을 잃어버린 성리학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에 체험한 기독교 신앙 때문이었다. 그는 갑진년(1784) 4월에 그의 친구 이벽(李壁)과 함께 한강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배 안에서 천지가 창조되는 시원이나 신체와 영혼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치에 관하여 들으니 놀랍고 의아하여 마치 은하수가 무한한 것과 같았다”고 고백하였다. 다산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성리학적 사상체계를 완전히 새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중용’ 해석은 정조를 놀라게 하였고, 다산을 평생토록 총애하는 신하로 가까이 두었다. 다산은 원시 유교에 나타나고 있는 인격적 상제 신앙을 회복하고 “실심으로 하늘을 섬기고, 신이 강림하여 자신을 감찰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며 두렵고 떨림으로 근신할 때”(戒愼恐懼), 비로소 윤리와 신앙이 통합된 실학(實學)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브레바드 차일즈(1923∼2007)는 현대사상(modernism)의 물결이 극에 달하여, 신학은 형이상학이 되고 신앙의 자리가 사라지던 시대를 살면서, 당대를 풍미하던 역사비평학을 벗어나 유신론적 성경해석학으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절감하였다. 그가 볼 때 지난 200년 동안 신학을 지배해온 역사비평학은 인간의 이성을 만물의 척도로 삼는 계몽주의의 산물로서 합리주의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성경이 증거하는 유신론적 세계관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경직된 역사비평학은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하므로, 모든 초월적 실재를 배제하였다. 결과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이적은 신화가 되고, 성서학은 종교사학적인 서술이 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자리는 상실되고, 성경은 믿음의 공동체와는 무관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교조적인 역사비평학을 따르는 성경해석은 믿음과 실천이 사라진 불모의 난국에 빠지게 되었다.

차일즈는 성경을 단지 문서나 문학이나 역사가 아니라 정경(canon)으로 보아야 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매체로 보아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성경은 하나님과 믿음 공동체의 역사적 만남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이후에 동일한 믿음을 가진 공동체에 규범이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실재를 증거하고 있으므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며’,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그 믿음에 참여하면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산과 차일즈는 각각 유학과 기독교 신학에서 당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서, 인격적인 유신론적 체험과 경전이 증거하고 있는 원시 신앙으로 돌아갈 때 참된 실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증거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신학과 교회는 종교개혁의 참신성과 창조성을 잃어버리고,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되고 성경이 증거하는 실천적 신앙은 시들어 가는 위기 가운데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지배정신이 된 물량주의, 세속주의, 영웅주의를 버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듣고 체험하면서 성경이 증거하는 믿음의 근본으로 돌아가 생명과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꽃피워 갈 수 있기를 사모한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 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