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베드로의 선택
입력 2013-04-12 17:37
요한복음 21장 17절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내가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심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냥 부인한 정도가 아니라 저주까지 퍼부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였습니다.
같은 날 주인을 배신하고 은 삼십에 팔아넘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뻔뻔한 얼굴로 다가와 그 선생의 얼굴에 입 맞추면서 주인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운명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대 사도로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가룟 유다는 교회의 공적이 되었고 영원히 멸망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갈라놓았습니까. 베드로도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유다도 “내가 의인을 억울하게 죽였다”면서 심히 후회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돈을 성전 궤에 던져 넣고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지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반대였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갈라놓았습니다. 자기 죄의 책임을 자기가 지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극악하고 추악한 배신의 죄에도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떠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처럼 추악하기 때문에, 이처럼 무능력하고 부패하고 악독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베드로를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양심이 소리칩니다. ‘야, 너 그런 죄 1만 번쯤은 지었겠다. 지난번에도 다시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느냐.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러나 참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는 그러한 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죄 때문에 더욱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런 믿음을 단 한 번도 소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쫓아 다녔으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의 책임을 지시기 위해 오신 분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도 동일한 배신의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을 버려두고 다 도망갔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그리스도 가운데 두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가 어디로 갈 것인가. 범죄한 자의 길은 두 개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죄의 책임을 지고 죽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든지, 내가 지은 죄가 어떤 죄이든지, 내가 같은 죄를 얼마나 반복해서 지었든지 간에 내가 내 죄를 책임지려고 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맡기면 살 길이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사랑 많으신 주님이시라도 ‘나 같은 것은 포기하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조차도 ‘나는 내 죄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다고 고백하며 주께 나가시길 바랍니다.
박혁 목사(예장합신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