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답장없는 편지
입력 2013-04-12 17:29 수정 2013-04-12 17:41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나는 당시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의 피에르 마라발 선생님에게 논문 지도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기꺼이 받아주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프랑스로 떠난 것은 그때로부터도 2년이 지난 뒤였고 프랑스에 가서도 2년을 더 준비해, 도합 4년이 흐르고서야 선생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답장이 필요없는 편지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편지봉투 하나를 내미는 것이었다. 4년 전 내가 선생님께 보낸 편지였다. 이제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왔으니 당신이 그 편지를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게 돼 내게 돌려준다고 했다. 내 편지를 4년이나 보관하다 돌려주다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서양문화는 수신이든 답신이든 간에 편지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 ‘제2의 성(性)’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서(戀書)조차 책으로 나왔고, 프로이드가 남긴 수많은 편지는 여러 종류로 출판됐다. 편지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은 고대문화의 유산이다.
4세기의 수도자이자 교회 지도자였던 바실리오스는 약 30년 동안 수많은 편지를 여러 곳으로 보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막내동생 페트로스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곳곳에 사람을 보내 맏형 바실리오스가 보냈던 편지를 모아 약 350통으로 된 서간집을 출판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아타나시오스에게 연이어 보낸 세 통의 편지다. 알렉산드리아까지 세 번이나 편지를 띄웠건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바실리오스는 단 한 번도 답신을 받지 못했다.
답장이 아예 필요치 않은 편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383년쯤 제롬이 유스토키움에게 보낸 편지다. 유스토키움은 로마 귀족 가문 태생으로 당시 16∼18세 되는 앳된 소녀였다. 몇 년 전 나는 이 편지를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출판 기준으로 무려 60쪽이 넘었다. 수도자 제롬은 이 편지에서 소녀 유스토키움에게 참다운 기독교적 삶을 제시한다. 제롬은 무엇보다 탐식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성경에는 탐식을 정죄하고 단순한 음식을 권하는 구절이 수없이 있습니다…. 첫 인간(아담)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보다 배(腹)에 복종함으로 낙원에서 쫓겨나 눈물의 골짜기에 던져졌습니다. 배고픔을 통해 사탄은 사막에서 주님을 유혹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버리실 것입니다’(고전 6:13)라고 외쳤고, 속물(俗物)에 대해서는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는다’(빌 3:19)고 했습니다. 실상 각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식하다가 낙원에서 쫓겨난 자들은 절제를 통해 낙원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롬은 명료하고도 매력적인 문체로 소녀에게 계속 권면한다. “음식을 절제하고 결코 배를 가득 채우지 마십시오. 기도하기 위해서 밤에 일어날 때, 트림이 나오는 소화불량 때문이 아니라 쇠약함 때문에 그리하도록 하십시오. 자주 독서하고 가능한 한 공부하십시오. 손에 책을 쥔 채 잠이 그대를 찾아오도록 하고, 거룩한 책이 떨구어지는 그대의 얼굴을 받도록 하십시오…. 음식에 배부르면 정신이 나태하게 되며, 물 댄 땅에서는 욕망의 가시가 자랍니다…. 밤의 매미가 되십시오. 밤마다 울음으로 침대를 씻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도록 하십시오. 사막의 참새처럼 깨어 있으십시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딤전 6:8).”
소녀를 향한 제롬의 궁극적인 권면은 그리스도를 영적인 신랑으로 맞아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연인에게는 아무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뜨겁게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노력도 어렵지 않습니다…. 마땅히 돼야 할 그대의 모습으로 이 순간 존재하도록 출발하십시오. 그대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아 8:6)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편지, 성경
유스토키움은 이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니 글로 쓴 답장이 필요치 않았다고 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얼마 후 소녀는 엄마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일평생을 사는 쪽을 택했으니 말이다. 이 오래된 답장 없는 편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신 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약 성경이 하나님의 편지라면 글로 쓰는 답장은 가당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몇 줄로 된 문자들의 나열이기보다는 나의 마음, 나의 영혼, 나의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