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에릭 폴리 목사] “한국 교회의 물질주의 극복… 돈 대신 정으로 품어야 서로 이해”

입력 2013-04-12 17:32 수정 2013-04-12 20:56


북한 지하교회 지원하는 서울USA선교회 에릭 폴리 목사

“북한 지하교인들의 기도제목이 뭔지 아세요? 서방을 비롯한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하고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핍박을 피해 50년 이상 숨죽여 신앙생활을 한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린 건 남한 사람도, 북한 인민도 아닌 한 서양인이었다. 서울USA선교회 공동대표 에릭 폴리 목사는 지난 2월 북한 지하교인의 실상을 공개한 저서 ‘믿음의 세대들-북한지하교인의 후손들’을 발간했다.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북한 지하교인을 지원하고 북한이탈주민에게 복음을 전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25년 전부터 미국 내 1500여개 기독교 선교단체와 일하며 노숙인, 마약중독자 등 소외된 이를 돌본 폴리 목사는 2003년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를 탄압한 국가로 꼽히는 북한을 주목했다. 박해받는 북한 그리스도인에겐 북한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그는 북한이탈주민에게 성경을 가르쳐 그들이 직접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역 때문에 그는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생명에 위협을 받았다. 종종 세계 각지에서 그와 함께 일해온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폴리 목사는 북한 기독교인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북한의 기독교 탄압 실태를 주저 없이 공개해 왔다. 10일 서울 마포동 서울USA선교회에서 만난 폴리 목사는 전날 북한이 밝힌 국내 외국인 대피 권고도 괘념치 않는 듯했다. 북한 미사일 위기로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매일 신앙 때문에 목숨을 거는 북한의 지하교인에 비하면 제가 받는 위협은 작고 사소합니다. 계속된 북한의 강경발언과 미사일은 저희 사역에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소외된 이들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미국 뉴저지 주에서 태어난 폴리 목사는 마취과 의사인 아버지 슬하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전문직 아버지 덕에 지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엄격했던 부모에게서 따뜻한 관심은 기대할 수 없었다. 다섯 살 때부터 그는 항상 혼자였다. 부모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던 폴리 목사는 홀로 동네 인근의 산을 오르내리며 외로움을 달랬다. 산길을 걸을 때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돌봐준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나 언어나 관습이 새로운 지역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돌아다녀도 전혀 길을 잃지 않았고 생경한 지역도 집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실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누군가 자신을 지키고 돌봐준다는 강한 믿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연합감리교단의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절 돌봐주는 존재가 하나님일 것이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 부모님 따라 갔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16세 때 하나님을 영접하면서부터 돌본 손길이 그분이란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진실하게 나를 이해해준 분이 하나님이란 걸 알고 나니 목회자가 돼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년시절은 외롭게 보냈지만 창의력과 집중력이 뛰어났던 폴리 목사는 남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10대 초반이던 7학년 때(한국의 중1) 선생님에게 받은 컴퓨터를 혼자 공부해 깨우쳤다. 이어 형과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 사업을 시작해 대학 입학하기 전까지 케이마트나 바이마트 등 대형 할인판매점에 팔았다. 사업은 성공했다. 운전면허를 따기도 전 그는 이미 차 2대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1970년대 미국에 가히 ‘PC 혁명’이 일면서 제 컴퓨터 지식은 여러 분야에서 환영받았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컴퓨터 강의교실을 열어 직장인, 사업가 교사 등에게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르쳤고 지역 라디오방송국에서 음악 프로그램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습니다. 당시 라디오 방송도 컴퓨터를 이용해 진행했거든요.”

낮엔 학생으로, 밤엔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라디오 프로듀서로 분주한 학창시절을 보낸 폴리 목사의 목적은 유명해지거나 사업에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꿈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를 위로하는 데 있었다. 폴리 목사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민을 보내오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이혼과 실직, 노숙생활을 경험했거나 외국인 불법체류자로 사회에 적응치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폴리 목사는 이들에게 목회 소명을 발견했다. 그가 외로움으로 하나님을 만났듯이 누구나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면 놀라운 잠재력이 나올 거란 확신에서였다.

“9년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알게 된 건 소외된 이웃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에겐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알아주는 게 필요해요.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멸시받는 자를 크게 쓰신다고 하시잖아요. 이 말씀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를 훈련해 하나님의 도구로 만드는 일이 제 사명이라 생각했습니다.”



북한 선교는 북한 사람 스스로

퍼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크리스천신학교(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을 전공한 폴리 목사는 신학생 때도 교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훈련해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많은 교회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사역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 훈련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들에게 제자훈련을 해 평신도 사역자로 만들면 교회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납니다. 신학생 시절 대부분 70세 이상의 여성 성도로 구성된 인디애나의 작은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받았을 때 제가 체득한 방법이지요.”

폴리 목사가 곧 문 닫을 교회를 빠르게 성장시키자 이를 눈여겨본 교단 감독은 그에게 더 크고 유명한 교회 담임목사로 옮겨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교회보다 기독교 단체가 사회적 약자를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폴리 목사는 안정된 목회자의 길을 버리고 노숙인 사역을 하는 ‘엘에이미션(LA Mission)’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노숙인 사역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도 이들이 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노숙인이 사역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바꿨다. 봉사자와 교회 성도의 식탁에 노숙인을 초대하고, 이들이 나서 사회적 약자를 돕게 하는 그의 사역은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 각지에서 후원이 답지하고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가 그를 찾아와 미국 비정부기구 운영 및 관리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1500여개의 기독교 단체를 컨설팅해온 그는 미국 역사상 하루에 가장 많은 자원봉사자를 동원한 ‘Adopt a block 500’ 전도집회의 인원동원을 맡아 동원사역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폴리 목사가 북한 사역에 뛰어든 것은 2001년 어느 날 꾼 꿈 때문이다. 북한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꿈으로 확인한 그는 2003년 서울USA선교회를 세우고 박해받는 북한 기독교인을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북한선교 사역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북한 사역에 북한이탈주민은 없고 한국 선교사가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폴리 목사는 노숙인처럼 그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돕는 경험이 절실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북한이탈주민을 북한 선교사로 훈련시키는 UU선교학교(Underground University)와 여성 리더십 함양을 위한 UT여성학교(Underground Technology)를 시작했다. 또 북한 내 그리스도인의 제자 양성을 위해 단파라디오방송인 ‘순교자의 참된 소리(TVOM·True voice of the Martyrs)’ 방송을 송출했다.

특히 그는 북한이탈주민 중 북한 선교사를 지망하는 이를 대상으로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 지하교회가 있는 국가로 선교여행을 보냈다. 지하교회를 체험함으로써 선교 현장에서 제자양육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습득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하교회는 평신도를 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목회자와 성경 없이 비밀리에 가정에서 예배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사람을 보내느냐’며 걱정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비밀예배가 현실입니다. 이에 맞게 양육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정

폴리 목사는 교회를 돈을 받는 직장처럼 여기는 북한이탈주민이나, 이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일부 한국 선교사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론 제대로 된 북한선교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북한이탈주민에게 돈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성경공부를 조건으로 돈을 제시하면 안 됩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일종의 거래인 셈이죠. 이런 교회의 선교방침을 안 북한이탈주민들은 중국에 잠깐 나와 선교사에게 돈을 챙기고 다시 북한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그는 돕는 이도, 도움 받는 이도 돈으로만 만족해선 안 된다고 했다. 대신 서로의 소유를 나누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 목사는 이를 ‘한국인의 정’이라 부르며 정을 나눠야 서로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인들은 개인적 성향이 강합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죠. 소외된 이들에게 단순히 주기만 하지, 받아서 나눌 생각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이탈주민이 정말 필요한 건 ‘정’입니다. 서로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예배도 함께 드리는 한편 이들에게 사역을 맡기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울USA선교회는 ‘재통일 홈파티(reunification home party)’라고 해서 미국, 캐나다, 한국 사람과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알아가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함께 떡을 떼며 집을 개방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북한이탈주민과 서로 돕는 건강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USA선교회에서 하는 100여개의 사역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라 믿는다는 폴리 목사는 더 많은 약자를 성장시켜 더 어려운 이를 돕는 게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설교해 서로의 영적 성장을 이루는 ‘아마추어 교회’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제가 16세 때 인상 깊게 읽은 공자 말씀이 있어요. 지도자가 죽으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신이 한 일이다’라고 말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리더 없이 사역이 이뤄지는 건 좋은 일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말씀처럼 앞으로 북한을 비롯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