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6개월째 2.75%로 동결… 毒이냐, 藥이냐
입력 2013-04-11 18:41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기준금리를 6개월째 연 2.75%로 동결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까지 나서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압박했지만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했다. 한은이 정부의 강력한 경제활성화 의지에 엇박자를 내면서 향후 경기약화 시 책임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하지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의 판단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하지는 않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또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연 2.8%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총액한도대출을 현재 9조원에서 12조원으로 늘리고, 대출금리를 즉시 연 1.25%에서 연 0.5∼1.25%로 내렸다.
◇경기부양 의지에 ‘찬물’, 갈등 고조=한은이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동결한 것은 경기 회복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북한 리스크와 엔저 공습 등 예측 불가능한 요인보다는 장기적인 경기회복 추세에 초점을 맞춰 기준금리를 결정한 것이다. 김 총재는 “북한 리스크를 예측하는 것은 우리 능력을 벗어나고, 엔저 현상 역시 사전적으로 상황을 상정해 미리 대처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반면 올 들어 물가상승률이 다시 고개를 드는 등 인플레이션과 같은 현실적 우려를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무상보육 등 복지효과 정책이 0.3%의 물가상승 요인이라고 보면 하반기에 물가상승률이 3% 초중반까지 오를 것”이라며 물가를 억제하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리 동결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한목소리로 경기부양을 외치는 현재 분위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2% 포인트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날 금통위 결과는 만장일치가 아니어서 내부적으로도 격론이 벌어졌음을 암시했다.
◇“컵에 물이 반이 찼는지, 반이 비었는지의 시각차”=김 총재는 이날 정부를 의식한 듯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김 총재는 먼저 “외부의 금리 인하 압박 등은 금리 결정 당시의 중요 변수가 안 됐다”면서 “한은은 중기적 시각에서 국민경제 발전을 고민하며 이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의 압박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또 “지난 1년을 돌아보면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 훨씬 더 완화적으로 움직였다”고도 했다. 한은이 정부보다 더 경기 부양에 기여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정부와의 경기 인식 차이에 대해서는 “자본시장, 환율, 가계부채 등을 종합할 때 금리 인하보다는 동결이 중기적 시각에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정부 평가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현재 정부와 한은이 바라보는 경제 상황은 물컵에 물이 반이 찼느냐, 반이 비었느냐의 시각차일 뿐 숫자(통계)는 괴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부의 경제 인식에 대한 불신을 여실히 드러냈다.
김 총재의 고집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여권에서 일고 있다. 정부 여당 내부에서 통화정책 수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한은 총재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돼 있는 데다 다른 공공기관장과 달리 대통령에게 임명권만 부여돼 있을 뿐 해임권은 규정돼 있지 않아 거취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