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대부분 육안 식별 어려워
입력 2013-04-11 19:24 수정 2013-04-11 19:12
“와, 저게 고래구나, 저건 호랑이인 것 같은데….”
천혜의 바위 캔버스였다. 대체로 희미했지만 군데군데 형체가 분명한 고래, 거북이, 호랑이 등의 동물 그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8000년 전 이곳에서 살았던 신석기인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사냥을 했던 자신들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기록했던 마음이 느껴졌다.
11일 문화재청 주관으로 열린 반구대 암각화 설명회 행사에 앞서 반구대 암각화를 절벽 바위 앞에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현장 취재가 이뤄졌다. 사연댐에서 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현장에 도작했다. 마침 건기여서 강물 수위가 내려가 바위그림 전모를 볼 수 있었다. 훼손이 심해서 그림인지 아닌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게 대부분이었다. 폭 10m, 높이 4m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각종 육지동물과 바다생물 등 300여점이 된다고 했지만 눈으로 찾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다시 배를 타고 나와 반구대 전망대에서 이뤄진 설명회에 합류했다. 설명회는 1971년 이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문명대(72) 동국대 명예교수가 주관했다. 문 명예교수는 강 건너편 암각화를 가리키면서 “저기 기역(ㄱ)자로 크게 꺾인 부분이 보이죠. 그 안에 울타리, 고래, 호랑이 등 4∼5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다 떨어져 나가고 없다”며 “40년 만에 이렇게 심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앞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암각화는 1965년 울주군 대곡리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강물이 차올라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는 바람에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다. 보통 7·8월 장마철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암각화는 물 속에 잠겨 있다. 특히 암각화의 주 암석은 셰일암으로 함수성(含水性)이 높아서 내구성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 최초의 고래 사냥 암각화다. 특히 묘사가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래가 뿜는 분수의 모양만 보고도 귀신고래인지, 향유고래인지 종류를 알 수 있을 정도다.
문화재청은 2010년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刻石)을 묶어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렸다. 천전리 각석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에서 대곡천 물길을 따라 약 2㎞ 상류에 있다. 2017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신청을 한다는 목표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놓고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견해(문화재청 등 중앙정부)와 지역 식수 부족 문제 때문에 암각화 주변에 생태제방을 쌓자는 의견(울산시)이 팽팽히 맞선 채 10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박맹우 울산시장이 예정에 없이 나타나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박 시장은 “문화재청이 울산시민을 문화재 훼손 주범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생태제방 설치안에서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울산=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