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막아야’ 대화카드로 남북 대치 돌파구 찾기… 류길재 통일장관 성명

입력 2013-04-11 17:56 수정 2013-04-11 22:51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11일 성명은 ‘조건부 대화 불가’였던 정부의 입장이 사실상 ‘대화 제의’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성명에는 개성공단이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인 만큼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정부의 첫 액션인 동시에 북한에게는 위협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뭘 원하는지 만나서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그간 정부는 “북한과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며 선(先) 대화 제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다가 북측이 남측 외국인 소개령을 내린 9일부터 정부 입장 변화 가능성이 감지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류 장관 성명에 앞서 오전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방북을 신청할 경우 이를 허가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놨다. 통일부는 “협회 방북을 불허하지는 않는다. 정부도 개성공단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방북에 대해 지원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10명 정도 방북단을 구성해 김일성 주석 생일 연휴가 끝나는 17일 공단에 들어가겠다고 통일부에 신청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류 장관이 오후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일각에선 남북 당국간의 대화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류 장관은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굉장히 비합리적 결정을 한다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문제가 장기화되면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강 대 강’으로 치닫기보다 대화를 통해 비핵화단계로 북한을 이끌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류 장관의 성명이 ‘명분쌓기용’이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리가 대화의 문까지 열어놨는데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강경 대응할 명분이 생긴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북한이 화답해 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은 이날도 위협을 계속했다.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박근혜 정권까지 우리와의 대결을 추구한다면 개성공업 지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박 대통령을 ‘청와대 안방주인’라고 칭한 뒤 “그릇된 행동을 중지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라고 지목했다. 북한의 공식 매체가 박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대선 이후 처음이다.

한편 35명의 우리 국민과 차량 23대가 귀환해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는 우리 국민은 261명으로 줄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