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철원 ‘국경선평화학교’ 강사 낸시 스미스 여사] “남북한 평화정착에 힘 보태고 싶어 왔다”

입력 2013-04-11 17:46


때늦은 눈이 내리던 지난 10일 강원도 철원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자동차로 5㎞쯤 달려가니 철원평화·문화광장이 나왔다. 강원도가 2011년 남북교류 및 협력을 위해 조성한 이곳 광장 한쪽에 자리 잡은 DMZ평화기념관 세미나실에서는 국경선평화학교의 영어수업이 한창이었다.

평화활동가 ‘피스메이커’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는 벽안의 낸시 스미스(82) 여사. 미국 뉴욕주의 한 대학교에서 20년간 심리학과 인문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그는 교편을 놓은 뒤 옥스팜과 세이브더칠드런 등 국제구호단체의 아프리카·아시아 지역 담당자로 활동한 평화·구호 전문가다.

스미스 여사와 국경선평화학교의 인연은 지난해 가을 평화운동 월간지에 실린 작은 광고에서 시작됐다. 스미스 여사는 “지난해 9월 ‘프렌즈 저널(Friends Journal)’에서 처음 교수 초빙 광고를 봤을 때부터 마음에 도전이 왔지만 더 이상 해외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다”며 “하지만 기도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스미스 여사는 지난 1월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날 오전 청강한 스미스 여사의 수업내용은 철학 강의에 가까웠다. 주제는 ‘정체성과 화해’였는데, 10명의 성인 학생들은 영어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떻게 ‘남과 북’이, ‘너와 내’가 화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도 이뤄졌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스미스 여사는 크고 힘찬 목소리와 정확한 표현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국의 예비 ‘피스메이커’들에게 거는 스미스 여사의 기대는 컸다. 그는 “이들이 사는 동안 남북한이 통일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들은 분명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고 거창한 평화운동이 아니라도 자신의 일터와 가족, 소속 공동체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필요성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스미스 여사는 15년간 서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네팔, 캄보디아 등 분쟁지역과 저개발국가에서 구호 및 개발 사업 담당자로 일한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대부분의 모금이 자연재해나 내전 등 갑작스런 위기가 발생한 나라들에 집중되는데, 위기 상황이 해소되고 나면 지원금 역시 말라버린다”며 “NGO들은 일회성 모금과 지원보다 현지인을 교육시키고, 교육과 보건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통령이나 통일부 등에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거나, 지역 내 평화단체를 찾아가 힘을 보태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평화는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