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가 편법 상속·증여와 국세청의 봐주기

입력 2013-04-11 18:59

재벌 기업들의 편법 증여를 관련법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미루며 세금을 부과하지 않은 국세청은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법률에 과세대상이 열거돼 있지 않더라도 사실상 상속이나 증여가 이뤄지면 세금을 매기도록 한 조세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것이 2004년의 일인데도 지금까지 단 한 푼의 세금도 걷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국세청이 재벌 편을 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도 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자녀와 배우자 명의 회사에 매장을 싸게 임대해 주는 등의 방법으로 손쉽게 부를 대물림한 재벌의 염치없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수백억∼수조원의 부당이익을 챙기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재벌이 아무리 공생을 외쳐도 우리 국민들이 쉽사리 믿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무당국이 법이 부실하다고 판단했다면 일단 과세한 뒤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면 될 일이다. 또 미국과 달리 우리는 행정부가 법률 제·개정권을 갖고 있는 만큼 입법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 제안으로 법을 고칠 수도 있다. 재벌을 봐주려는 의도가 없는 바에야 어떻게 10년이 다 돼가도록 손을 놓고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증여액 산정이 가능하다면 완전포괄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며 기재부가 국세청에 책임을 떠넘겼다는 점이다. 기재부와 집행기관인 국세청의 책임 전가로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휴지조각처럼 돼버린 이 기막힌 현실을 도대체 해당 부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재벌만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야 할 정도의 재산도 없기 때문에 조세완전포괄주의는 재벌가를 비롯해 우리 사회 상류층에나 해당된다. 과세 대상이 적어 세금을 걷기도 쉽다. 그런데도 손을 놓고 있다가 감사원의 통보를 받고는 부산을 떨고 있다. 재벌가의 편법 증여에 철저하게 세금을 매기고 보완할 법령이 있다면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