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이팝나무

입력 2013-04-11 17:38

매년 5∼6월에 하얀 꽃이 나무 전체를 덮을 정도로 만발하는 나무가 있다. 개나리와 같은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며 높이 20∼30m로 자라는 이팝나무이다. 니팝나무 니암나무 뻣나무라고도 불리는 고유수종(樹種)이다.

이팝나무란 이름이 붙게 된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양력 5월 6일 무렵인 입하(立夏)를 전후해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이라고 했는데 이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이팝’으로 변했다는 것이 하나다. 또 꽃이 쌓인 모양이 마치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것 같다’ 하여 이밥나무(쌀나무)가 이팝나무로 됐다는 얘기도 있다.

이 때문일까. 이팝나무는 궁핍한 사연을 많이 담고 있다. 흉년이 들어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어린 아이를 뒷산에 묻고, 살아서 못 먹은 쌀밥 대신 실컷 먹으라고 무덤 곁에 심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나무도 있다.

예로부터 농촌 지역에서는 이팝나무의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기도 했다. 이팝나무 꽃은 비가 적당히 오면 활짝 피고 가물면 잘 피지 않는 것이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벼농사와 관련돼 있는 셈이다.

최근 가로수 수종으로 미관상 좋은 이팝나무가 떠오르고 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서울시내 가로에 한 그루도 없었으나 2008년 4175그루(1.5%), 2011년 8874그루(3.1%), 지난해 9978그루(3.5%)로 최근 7∼8년 동안 급증했다. 복원된 청계천 주변에도 가로수로 이팝나무 15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시 ‘박정희로(路)’ 3㎞에 심어진 가로수도 이팝나무다. 경제발전으로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게 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자 구미시가 650여 그루로 2008∼2009년 조성한 것이다.

지난 8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15∼18대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에서 구매해온 높이 5m, 20년생이라고 한다. 이곳은 군락지가 형성돼 있을 정도로 이팝나무가 유명하다.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 식수 때 주로 이팝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요즘 북한의 잇따른 위협으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보릿고개’를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이 풍요와 평안 등을 가져온다는 이팝나무를 심은 뜻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지금 남북관계에서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기대한다면 시기상조일까.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