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6절
우리는 소위 수도자(修道者)라고 하면 ‘도를 닦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성인의 가르침인 말씀에 길 도(道)자를 쓰는 것일까요? 이는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가치가 그 말씀대로 행하는데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길을 닦는 이유가 그 닦은 길로 가기 위해서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신라 제일의 문장가 강수 선생은 “가난하고 비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작 부끄러운 것은 도를 익히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백면서생이 아닌 선비의 실천사상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성경에도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26)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도라고 한다면 성경을 가까이 하며 보고 듣는 이유 또한 그 보고 들은 바대로 행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길이 이미 닦여져 있을지라도, 그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그 길을 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라 해서 무조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길이라고 다 같은 길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 즉,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곧 진정한 의미의 길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신앙의 길잡이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본문 말씀이 떠오를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의 ‘길’은 어떤 길을 의미합니까? 그 길은 우리 신앙인들이 찾아야 할 길인 것입니다. 즉, 신앙의 목적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갈급하게 하나님을 그리며 그 길을 찾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신 30:19∼20)라며 하나님께서 애타게 호소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얻게 되는 그 길은 과연 어떠한 길일까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넓은 길이 아니라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좁고 협착한 길을 걷는 그가 바로 말씀을 깨닫고 지키는 자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이 구하는 길이 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인내로 오늘도 내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전진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통해 구원과 영생의 참 복을 많이 많이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김성곤 인천왕성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생명과 복이 있는 길
입력 2013-04-11 16:58 수정 2013-04-11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