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운식 (10·끝) 내 인생 최고의 성공은 ‘예수 영접’과 ‘이웃 섬김’
입력 2013-04-11 16:57
2007년 6월과 7월은 내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시기다. 6월에는 성지순례 선상에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건’이 발생했고, 7월에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이후 나는 많이 바뀌었고, 내 인생은 성공 중심의 삶에서 나눔 중심의 삶으로 변화하게 됐다.
나는 50여명의 여행업계 종사자들과 함께 만든 TNT클럽(Travel & Tourism Club)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려 노력해 왔다. TNT클럽의 정기모임에서는 관광전문가 특강, 세미나 개최, 뉴스레터 발행 등의 행사를 진행하지만, 클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나눔과 봉사다.
2007년 만들어진 TNT클럽은 첫해 지체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서울 은평천사원에 200만원 상당의 지원금과 도서 의류를 전달하며 나눔 사역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처남이 네팔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아원 ‘어린이집’을 후원하고 있다. 지금은 이때 만난 네팔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TNT클럽은 이외에도 경북 문경 신망애육원 등 보육시설과 미자립교회 등에 지원금과 도서를 보내왔다.
복음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변화된 것은 삶의 방향만이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더 커졌고, 특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나는 늘 아내와 두 아들과 손자·손녀들을 마음 깊이 사랑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을 뜨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더 감사하게 됐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더 깊어지게 됐다.
이런 변화를 통해 나는 2010년 아내와 금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마치 신혼부부처럼 예복을 입고 사진도 찍었다. 아내는 이날 처음 결혼식을 했던 때처럼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와 아내는 1960년 12월 3일 결혼했고 아내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아내의 기도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금혼식 당일 나는 부쩍 수척해진 아내의 손을 잡고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두 아들이 반듯하게 자라준 것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나의 못 이룬 꿈을 투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나의 꿈보다 중요한 것이 두 아들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장성한 두 아들이 보내온 편지는 자식농사를 망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큰아들은 내가 아이들을 양육할 때 강조했던 ‘중용’의 정신을 늘 가슴에 품고 살겠다고 편지에 적었다. 또 ‘칭찬보다 비판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라’던 나의 조언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기준이라고 말해 주었다. 둘째 아들은 나를 ‘개방적 사고의 아빠’ ‘국제적 감각의 아버지’ ‘강인한 추진력의 아버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늘 추구해 온 삶의 가치들이 두 아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 감사했다.
나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고 있다. 재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일푼에서 시작한 내게는 과분하다 싶을 만큼 재물도 얻었고, 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도 얻었다. 하지만 예수를 영접하고 난 이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도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사업가 정운식이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정리=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