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낙하산이 위험한 이유
입력 2013-04-11 17:38
“관치로 공공기관 부실 심화시키는 악순환 반복돼선 안돼… 폭넓게 인재 중용해야”
공자가 롤 모델로 삼은 주나라 주공은 인재 욕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하루에 7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인재라고 생각되면 그를 등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 번 머리를 감을 동안이라도 인재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세 번이나 나갔다는 ‘일목삼착(一沐三捉)’, 밥 한 끼 먹는 짧은 시간에도 먹던 음식을 세 번이나 뱉고 나가 인재를 만났다는 ‘일반삼토(一飯三吐)’ 고사는 그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조선 세종은 정적은 물론 자신의 즉위를 반대했던 인물들까지 포용력 있게 중용한 용인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장인 심온을 모함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유정현과 박은에게 정치보복을 하기는커녕 양대 정승 자리를 맡겼는가 하면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반대하고 자신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쫓겨난 황희를 불러들여 관찰사, 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 직위를 주며 18년 동안 국정을 맡겼다.
각료 후보자들의 인사 참사로 아직도 제 모습을 못 꾸린 박근혜 정부가 첫 공기업 인사부터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달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철학 공유’라는 새로운 조건을 붙였다. 실상은 ‘MB맨들은 알아서 다 나가라’는 엄포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거들었다. “임기가 남아있어도 교체가 필요하다면 건의하겠다. 그분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으로 본다”며 MB정부 금융권 4대 천왕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전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
제일 먼저 두 손을 든 건 강 전 회장이다. 2년 전 ‘생계형 낙하산’이란 모욕을 감수하며 차지한 자리인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옷을 벗으려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진 않았을 거다. 그 자리엔 중앙대 교수 출신의 ‘자칭 낙하산’이 입성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든, 금융위원회가 알아서 기었든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데다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창립멤버이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일을 해서 추천하긴 했지만 막상 자산 192조원의 거대한 금융 공기업을 맡기려니 못미더웠나보다. 산은지주 회장과 산업은행장을 분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니 말이다. 결국 금융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은 얼굴 마담으로, 실무는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구상 아니겠는가. 홍 회장은 전문성도, 국정철학 공유 기준에도 안 맞는다. 보은인사, 논공행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든지.
낙하산 인사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3년 정도 두둑한 연봉이나 챙기면서 정권 입맛을 맞추다 떠나면 되지만 그 사이 공기업은 골병이 들 대로 들어 침몰하기 직전이다. MB정부 5년 동안 10대 주요 공공기관 부채는 240조원이 늘어난 376조원으로 올해 정부 예산규모(342조원)를 훌쩍 뛰어넘는다. 관치(官治)에 끌려다닌 결과다. 실력 없이 ‘빽’으로 앉은 인사들은 개혁이나 장기발전구상은커녕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나랏돈으로 선심을 쓰는 악순환을 되풀이해 왔다.
얼마 전 한국거래소 노조는 현 이사장 임기가 8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노골적으로 증권사 출신 대신 ‘힘센 낙하산’을 보내달라는 성명서를 냈다. 속내는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인사가 와서 급여와 복지혜택을 늘려 달라는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열정이 사라진 지 오래인 공공기관의 슬픈 현실이다.
박 대통령이 최종 낙점하는 공공기관 인사 7000여명은 지금 폭풍전야다. 구관이 명관이면 지난 정부 사람이라도 중용하고, 수첩 속 좁은 인재 풀만 들여다보지 말고 폭넓게 인재를 발탁해 낙하산 인사 고리를 끊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