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의학 인체를 보는 시선 달랐다

입력 2013-04-11 17:18 수정 2013-04-11 17:27


몸의 노래/구리야마 시게히사/이음

여기 두 가지 인체그림이 있다.

중국 원나라 때 활수가 저술한 경맥학서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1341), 벨기에 해부학자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서 ‘파브리카’(1543)에 각각 나오는 것들이다. 그림에서 보듯, 동양 의학에선 도무지 근육의 개념이 없었다. 또 서양의 해부학적 관점에서는 경맥과 경혈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서양의 몸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달랐다.

몸을 보는 시선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동서양 비교의학사 최고 권위자인 일본 구리야마 시게히사 교수가 쓴 ‘몸의 노래’는 이 궁금증에 대한 탐사보고서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130∼220) 저서에는 근육질 몸에 관한 이론이 어느 정도 정비돼 있고, 중국 후한(25∼220)말에는 고전 침술의 기본 개념이 확립됐던 것과 달리 거슬러 올라가, 히포크라테스 전집이나 중국 마왕퇴 문헌 같은 초기 자료를 보면 그런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차이를 역사적 산물로 보면서 그 변화를 잉태한 시기로 고대를 집중 탐구한다.

이를 테면 서양의학의 근육에 대한 관심을 선명함에 대한 그리스적 열망에서 찾는다. 이는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정의(definition)’를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다.

근육에 대한 관심은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독 강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근육은 무시됐다. 그런데 그리스 문화는 근육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다. 창자를 이용해 점을 쳤던 고대 그리스의 관습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운동선수와 전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 울퉁불퉁 근육질을 신체의 아름다움으로 이해했던 예술가의 시선도 근육에 대한 의학적 관심을 발전시킨 요인으로 해석된다.

흥미 있는 건 서양에서도 진맥을 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 손목 위에 손가락을 얹어 박동수를 재는 모습은 동양의 진맥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외관은 비슷했더라도 서양 의사가 잰 것은 박동수였고, 동양 의사는 맥의 흐름을 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더욱이 선명함을 지향하는 서양문화는 결국 이를 수치화해 박동수로 재는 기계를 발명시켰고, 진맥 문화는 점차 쇠퇴했다.

동양의학에서 맥의 표현은 얼마나 모호한가. 맥이 그득한지, 비었는지, 조용한지, 움직이는지, 매끄러운지, 거친지를 살핀다고 한다. 그럼에도 서양 의사들이 꺼려했던 진맥을 한의사들은 선호했다. 2000년 동안 이어지면서 맥을 표현하는 어휘는 32개까지 늘었다. 활맥을 진주가 부드럽게 구르는 것에 비유하는 등 그 표현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여기엔 도가적 전통이 깊이 스며 있으며 최고의 진실은 분명한 표현을 거부한다는 믿음에 대한 찬양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서양의학의 근육 중시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의 고대 철학과 예술, 사회와 문화를 종횡무진 연구하는 저자는 안색을 살피는 동양의학의 특징을 전할 때는 동양의 오행이론과 공자·맹자의 철학, 당시 사회상과의 연관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렇듯 방대한 지식을 풀어놓으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몸에 대한 인식 차이는 영구불변한 태도가 아니라 역사적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일관된 논지를 끌고 가는 힘이 놀랍다. 정우진 권상옥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