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성국] 협동조합 성공의 길

입력 2013-04-11 17:39


협동조합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5명 이상의 조합원이 모여 정관을 만들고 시·도지사에게 신고·설립등기만 하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요건이 완화되었다. 협동조합은 영리적 목적을 추구하지만 회원들에 의해 운영되므로 상호신뢰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한 인적 결합을 우선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은 세계화에 따른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서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자립을 돕는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협동조합이 영리법인으로서 시장에서 전문적인 기업과 경쟁을 벌여야 하지만, 경영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라는 내부적 역량이 부족하고 또한 사회적 인지도가 낮아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하는 등 실패사례도 다수 관찰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개발하지 못하고 특정 사업, 특정 시장에만 국한된 운영으로 결국 실패하는 경영상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조합원간 ‘협동조합 정신’이 공유되지 못해서 조합원간의 의견충돌로 인해 좌초하는 경우도 많다. 협동조합이 우리나라의 시장풍토에 뿌리를 내리고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19세기 중엽 독일에서 일어난 협동조합운동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타산지석을 삼고자 한다.

1847년 겨울 대기근이 중부 유럽을 강타했고 독일에서도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혹독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라인강 중류 농촌지역 바이어부쉬의 시장으로 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라이파이젠은 마을 사람들의 아사를 방지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우선 형편이 비교적 나은 주민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마을기금을 조성했고 그 기금으로 곡식을 사서 굶주린 주민들에게 외상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그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성된 마을 기금으로 공동 빵집을 운영하면서 만들어진 빵을 가난한 주민들에게 외상채권을 받고 나누어 주고, 주민들이 나중에 수입이 생길 때 갚을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조직된 ‘빵조합’은 1866년 마을금고 형태의 금융협동조합으로 발전하였고 다른 도시나 마을에도 라이파이젠 방식의 협동조합이 생겨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작센지방 판사였던 헤르만 슐츠는 자유시장 경쟁에서 소외되고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독일의 목수나 구두수선공과 같은 영세 기능공들의 생존과 자활을 돕기 위한 금융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인 폴크스방크의 효시가 되었다.

독일의 협동조합운동은 라이파이젠과 슐츠라는 지도자의 박애정신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주민들의 자조, 자립정신이 만나 결실을 맺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양극화된 경제체제에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농민들과 소상공인들이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두 선구자는 서민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성공사례는 전 유럽에 파급되어 영국의 로치데일에서 시작한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독일을 거쳐 유럽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협동조합이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적 자본 형성을 통해 경제민주화 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정신이라는 본연의 설립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협동조합 정신이란 외부의 지원 없이 주민 스스로에 의해 자생적으로 조직되며 분명한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출발하지만 업역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궁핍에 처해 있는 이웃을 돌아보는 이웃사랑과 조합원의 연대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