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어긋나면 깨끗이 잊어버리는 뇌의 속성
입력 2013-04-11 17:18
의도적 눈감기/마거릿 헤퍼넌/푸른숲
미국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서 젊은 여성이 칼에 찔려 죽었다. 사건 발생 당시 38명의 목격자들이 30분 이상 지속된 그 사건을 지켜봤다. 하지만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 정치가들은 사회적 무관심을 개탄했다. 유독 뉴욕 시민들이 타락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이는 범죄의 도시로 불리는 뉴욕 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 눈감기’라는 뇌의 본성에 따른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의도적 눈감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도 그것이 뇌의 본성과 어긋난다면 고의로 무시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보고도 못 본 척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려는 뇌의 비겁한 속성을 뜻하는 말이다.
영국 BBC 방송 PD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저자 마거릿 헤퍼넌은 인간이 왜 자꾸 위기를 자초하는 행동을 되풀이하는지 연구하다 뇌가 우리 행동의 원천이라는 점에 착안, 뇌에서 답을 찾았다.
저자는 여러 실험이나 연구 결과를 통해 눈감기의 결과로 우리들 앞에 크고 작은 사건과 위협들이 들이닥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미국 심리학자 빕 라타네와 존 달리의 실험이 흥미 있다. 그들은 피험자 6명을 세 방에 나눠서 첫 번째 방에는 1명, 두 번째 방에는 2명, 마지막 방에는 3명을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피험자들이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연기를 흘러 보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혼자 있던 피험자는 연기가 새어 들어온 지 2분 만에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2명이 있던 방에서는 10번의 실험 중 1번만 연기가 들어온다고 알렸고, 3명이 있던 방에서는 전체 24명 피험자 중 1명만이 알렸을 뿐이다. 이른바 ‘방관자 효과’인 것이다.
저자는 건강검진 미루기나 배우자 불륜에 눈감기 등 일상 차원의 문제들로부터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정유공장 폭발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사회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도적 눈감기의 파장 아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뇌가 얼마나 비겁하며, 인간이 어디까지 맹목적일 수 있는지를 생생히 체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뇌의 속성상 생겨나는 의도적 눈감기라는 치명적 부작용에 그저 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매 장마다 의도적 눈감기와 맞서 싸워온 용기 있는 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발견한 내용을 실었다. 이를 토대로 의도적 눈감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의도적 눈감기는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도 우리에게 내재돼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김학영 옮김.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