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씬 시티’ 닮은 한국판 소설 버전

입력 2013-04-11 17:09


미국 영화감독이자 만화가인 프랭크 밀러 원작의 영화 ‘씬 시티(Sin City)’는 영화와 만화의 중간점에서 상상을 현실로 끌어내는 미학을 보여준다. 극대화된 흑백의 비주얼은 컬러보다 더 잔인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유혹적인 말과 밤거리 여인들의 싸구려 미소와 한방의 총소리. 그것이 펄프 픽션 ‘씬 시티’의 매력일 것이다.

시인이자 극작가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최치언(43·사진)의 첫 장편 ‘악의 쑈’(웅진문학임프린트 곰)의 주인공인 형사 검은바바리 역엔 ‘씬 시티’에서 하티건 역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가 어울릴지 모른다. 이 작품은 잔혹의 리얼리즘을 한껏 부풀리며 어떤 유예나 주저함도 없이 낯설고 충격적인 서사로 치닫는 한국판 펄프 픽션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검은바바리는 되도록 자신의 어떤 알 수 없는 무지막지한 힘에 의해 더러운 개천에 처박혔다는 것을 잊으려고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키의 두 배에 달하는 다리 위로 ‘호잇’하고 바람처럼 훌쩍 뛰어올랐다고 말하면 그건 능금 쪼개다 손가락 뼈 부러지는 소리고, 그때 검은바바리는 느그적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을 뿐, 다리 위로 뛰어오른 것은 주책 맞은 그의 생각이었다. 그제야 검은바바리는 조두식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9쪽)

형사 검은바바리는 조직폭력배 조두식을 뒤쫓지만 실상 더 폭력적이고 가장 타락한 인간은 검은바바리다. 코앞에서 조두식을 놓친 검은바바리는 자신과 내연의 관계에 있는 김미라 순경이 경찰서장과 통정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을 인질로 삼으며 길길이 날뛴다. “검은바바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자신이 성인영화관에 잘못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으나 자신은 성인이므로 성인영화를 봐도 된다는 듯 이 검은바바리 깃을 한번 툭 세우곤 쏜살같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검은바바리는 이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왜 닭 새끼들은 모가지를 비틀어야 하며 돼지 새끼는 목을 따야 하는가?’”(27쪽)

실제로 소설에서는 사람의 목숨이 닭이나 돼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는데, 등장인물들은 이름이나 별명에서 이미 우리 주변의 범죄형 인간들을 패러디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오신화(슬리퍼로 사람을 때려잡는 조폭), 십방애(조폭 두목), 홍어조(오신화의 친구), 대빵신나리(홍어조의 고교 후배), 선생조다쉬(야간전수공고 학생주임)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나리꽝무녀, 말타고오줌참아부족 같은 별명에서는 이게 소설외전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바탕 피바람을 불러오는 조폭 이야기를 쓴 이유에 대해 최치언은 이렇게 능청스럽게 풀어놓고 있다.

“이 이야기는 빌어먹을 연애에 넌덜머리가 난 연인들과, 하루 종일 게임방에 처박혀 새 돼버린 인생에 총질을 해대는 인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색다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졌으나, 또한 굳이 그것들과 상관없다고 볼 수도 없는 이야기다. 어차피 나는 새는 추락의 공포 속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두 날개를 의심하여 날아야 하고, 식자들은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 신의 은총과도 같은 무지의 촛불을 떠들썩하게 켜 들어야 할 것이다. 그 촛불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완전하게 비어 있는 질문이 들린다. ‘대체 무얼 바라지’.”(7쪽)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