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값 연일 추락하는데… 골드바는 없어서 못 판다

입력 2013-04-10 18:18


부동산 재산 40억원, 연소득 3억원인 자영업자 A씨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세금을 줄인다며 두 자녀의 계좌에 돈을 넣어뒀는데, 국세청이 연초부터 차명계좌와 불법 증여 근절에 나섰기 때문이다. 속 편하게 증여세를 내면 되지만 부담이 너무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 각 은행 PB센터에는 A씨와 같은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차명계좌에 발 동동=시중은행의 한 PB센터 팀장은 10일 “최근 고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차명계좌 정리뿐 아니라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묻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이처럼 다급해진 건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선언하면서 차명계좌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지난 1월 20일 차명계좌로 탈세한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해 정밀조사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PB센터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차명계좌를 정리하라고 설명해도 곧바로 계좌를 정리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낼 생각을 하니 선뜻 나서지 못하고 돈을 숨기거나 절세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으로 물려주자=차명계좌 이용이 어려워진 데다 불법 증여·상속까지 국세청 감시의 대상이 되자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금’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고액 자산가인 B씨는 지난달 KB국민은행 PB센터에서 금을 1㎏ 매입했다.

B씨는 표면적으로는 자산 포트폴리오 배분을 위해 금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B씨가 금을 산 진짜 이유는 ‘증여’ 때문이다. 금은 자녀에게 재산을 세금 없이 물려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금은 보통 매입할 때 부가세와 수수료 명목으로 금값의 약 15%를 내야 한다. 하지만 상속이나 증여가 가능해 오히려 돈을 더 아낄 수 있다는 게 고소득자들의 판단이다. 국세청이 현물인 금이 오가는 걸 단속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걸리지만 않으면 남는 장사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금값이 연일 추락하는데도 시중의 골드바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4일 골드바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무려 355㎏(약 211억원)을 팔았다. 지난 4일부터 골드바를 판매한 롯데백화점도 8㎏(약 5억5000만원)을 판매했다.

◇장기보험으로 상속세 대비도=아예 장기보험을 통해 비과세 혜택을 누리면서 상속세를 대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다른 자산가 C씨는 얼마 전 1억원이 넘는 돈을 매달 넣는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만기는 10년이다. 시중은행의 적금과 비슷한 금리 혜택을 주고 비과세 혜택까지 있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저축성 보험은 10년 이상 매월 일정금액을 꾸준히 납입할 경우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여윳돈이 있어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자산가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적금 상품인 셈이다.

최근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종신보험을 통해 유가족이 10억원 이상의 목돈을 받게 하는 전략도 유행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상속세를 내면서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상속세를 낼 돈을 종신보험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공식적인 상속으로 재산가치가 크게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종신보험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