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감시 피하는 자산가들… 예금 빼내 5만원 뭉치 금고에 숨긴다

입력 2013-04-10 18:01 수정 2013-04-10 22:08


세무 당국이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대대적인 세원 발굴에 나서자 고액 자산가들이 5만원권 현금 다발로 거액을 인출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소나기를 피하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현금으로 숨겨놓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은행이 자산가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담당 임원 A씨는 10일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돈 흐름을 추적하자 예금을 모두 찾아가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국세청의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차상위’ 자산가들이 동요하는 경우가 더욱 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이 국세청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던 대자산가보다는 상대적으로 감시망이 느슨했던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이번에 적발되면 국세청의 영구적인 ‘관리대상 리스트’에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대형 식당을 하는 B씨의 경우 지난 2월 초부터 최근까지 10억여원을 넣어뒀던 금융상품을 모두 해지하고 분할 인출했다. 인출한 돈 중 3억여원은 골드바(금괴)로, 나머지는 현금으로 보관 중이다. B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금을 내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번 소나기에 잘못 맞으면 평생 국세청의 감시를 받게 된다는 점이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임원 C씨는 “최근 5만원권이 발행량에 비해 유통량이 적은 것은 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고액 자산가들의 인출과도 연관이 있다”고 귀띔했다.

불법 상속·증여용으로 판매가 급증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골드바는 판매처에서 일련번호가 기록되기 때문에 최초 구입자가 누구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금을 뽑아 금고에 넣어두면 각종 전산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5만원권 발행잔액이 전체 지폐 발행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8%에서 지난해 62.8%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만원권의 시중 유통량은 갈수록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5만원권을 많이 찍어내지만 시중에 돌지 않고 개인금고 등에 잠들어 있다는 얘기다. 5만원권으로 15억원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 개인금고의 백화점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최근 20% 정도 증가했다.

국세청은 고액 자산가의 ‘현금 은닉’이 심각하다고 보고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해 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FIU가 제공하는 1000만원 이상 금융거래 정보를 분석하면 잠적한 고액 자산가라도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현금을 숨기는 자산가 대부분이 사채업자 등 민생침해사범이나 세금 탈루를 목적으로 현금 거래를 유도하는 자영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