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음세대를 세우자] 아이들의 건강한 자아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입력 2013-04-10 17:24


‘좋은 여건=행복’이 아니라 ‘하나님=행복’ 임을 깨닫게

우리는 좋은 환경과 탁월한 조건이 자아상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건과 환경이 아이들의 자아상을 건강하게 혹은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이 건강한 자아상과 병든 자아상을 결정짓는다. 아무리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가치관을 지니고 살면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된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지라도 사단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살면 병든 자아상을 갖게 된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이 세상에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신감을 갖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건강한 아이들도 많이 있겠지만, 요즘 자신이 가치 없다고 여기며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어떤 잘못된 가치관이 들어와 있는 것일까?

‘조건이 곧 행복’이라는 가치관은 아이들의 자아상을 병들게 한다. 우는 사자 같이 믿는 자들을 삼키려는 사단의 전략은 조건이 행복이라는 거짓말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고 예쁘거나 재주가 많고 부자이거나 생산적인 사람들이 존중받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가치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할 때 우리는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이같이 평가하여 그들의 자존감을 상하게도 합니다.”(기독교 상담 시리즈 ‘자존감’ 중에서)

‘좋다 나쁘다, 가치 있다 가치 없다’의 기준과 조건이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부추기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은 외모,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성공, 돈에 집착한다. 이런 것들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만 있으면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영향이다. 크리스천 부모들까지도 자녀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적인 조건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겨울 한파가 몰아친 어느 날, 교회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여자아이가 버스정류장에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복을 껴입어도 추운 날씨에 그 아이는 얇은 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여보, 쟤 좀 봐요. 아니 이 추위에 어쩌려고.” “이상할 거 없지.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남편의 대답에 허탈하게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맞다! 사랑받고 싶은 거다. 성형을 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이다.

왜 아이들이 병들어가는 걸까? 사랑받고 싶은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거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이성친구에게 무시당하면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성격이 나빠서, 못생겨서, 날씬하지 않아서, 가난해서 다들 날 싫어하는 거야.’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면 사단적이고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고방식이 아이들 안에 무섭게 들어온다. ‘난 바보야, 쓰레기야,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고 사고를 치는 것이다.

우리는 최고의 권력자도, 재벌도, 스타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을 때 아이들의 자아상은 회복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내 인생의 목표요 미래요 축복이요 행복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실패했어도, 친구가 없어도, 성적이 떨어졌어도,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면 고통과 시련이 올 때 기뻐한다. 믿음이 좋은 아이들도 사실 내면 깊은 곳은 최고가 돼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욕심은 수렁에 빠졌을 때 깨진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비로소 믿음이 없는 내 자신,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시작이 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면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삶에 문제가 생기고 시련이 찾아올 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며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부족함을 받아들지 못해 절망하고 무기력해지면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는 변화가 오지 않는다.

이럴 때 힘들어도 하나님을 더욱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에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지혜가 부족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지혜를 구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나의 부족함이 강점이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고3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죽어가던 아이가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후 청소년 인투 훈련학교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사단과 싸워야 하는지 배우기 시작했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이 아이는 하나님을 붙잡고 영적전쟁을 선포하며 싸웠다. 기도해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싸워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놀랍게 회복됐다. 그 아이가 보낸 문자를 소개하려 한다.

“매일 영적전쟁이 치열해요. 마음이 심란해서 넘어지기도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곤 해요. 힘들지만 이것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를 통해 엄마 아빠가 변해가고 있어요. 저를 통해 우리 가정이 변해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죽고 싶을 때도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려고요. 진짜 생각해보니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회복시켜주셨어요. 튀어나오는 것도 없어지고, 쓰러지는 것도 사라지고, 어지럽고 꽉 막힌 느낌도 사라졌어요. 그리고 그렇게 끊기 힘들었던 휴대전화 게임도 끊게 해주셨어요. 이제 마음만 더 좋아지면 되는데 이것도 곧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생겨요.”

영적전쟁이 시작되고 시련이 다가왔을 때 연약함과 부족함이 드러났지만 이것을 기회로 이 아이와 온 가족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아이의 약함은 강함이 되고, 가정의 부족함은 축복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모와 교사들의 인생의 목적이 되고 삶의 전부가 될 때 아이들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축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아이들도 믿음의 삶을 닮아 가게 되고 어떤 시련 속에서도 건강한 자아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 이 아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하신주 원장<온누리교회 인투교육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