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은 무대에 섰을때 빛이 나는 거죠”
입력 2013-04-10 17:24
5월 11∼12일 ‘25주년 콘서트’ 여는 봄여름가을겨울
1991년 발매된 퓨전재즈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라이브 앨범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990년 12월 31일 서울 63빌딩에서 펼쳐진 공연 실황을 CD 두 장에 나눠 실은 앨범은 160만장이 팔리며 대박을 쳤다. 진정한 의미의 국내 첫 공연실황 앨범으로 꼽힌다. 그때 그 공연의 ‘세트 리스트(곡 순서)’ 그대로 전설의 무대가 재연된다. 다음 달 11∼12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봄여름가을겨울 25주년 콘서트에서다. 합정동 카페에서 9일 만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 김종진(51·보컬 겸 기타)과 전태관(51·드럼)은 막 타임머신을 타기 직전의 사람들처럼 설렌듯했다. 이들은 1988년 데뷔했다.
“산타나나 거장들 공연을 보다보면 새로 나온 음악 들려주는 것보다, 옛날 것 좀 더 해주지,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25주년을 기념하면서 팬들과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집합이 뭘까 고민하다 생각한 게 라이브 앨범을 그대로 재연해서 ‘타임머신’을 타고 한 번 가 보자 한 거죠.”(전태관)
김종진이 이어받았다. “진짜 타임머신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정서로 가능한 거죠.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니까요. 음악은 글이나 그림과 또 달라서 음악을 듣는 순간, 그 시절 맡았던 냄새까지 기억하게 하는 정서적으로 정말 중요한 도구에요. 그런데 뭐랄까. 2013년, 우리는 물질적으론 굉장히 풍요로워졌지만 (정서적으로는) 삶이 훨씬 팍팍해졌어요.”
이번 콘서트의 포스터는 1991년 앨범 재킷 그대로다. 전태관은 “아는 사람들에겐 포스터를 보는 순간 25년 전 그때 공연으로 확 돌려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앨범이 이들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렸다. 왜 그렇게 대중들은 열광했을까. 김종진은 “그땐 몰랐는데, 사람들이 우리의 실험정신을 샀던 것”이라며 “그때부터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원으로 원하는 곡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멜론 등 음원 시장에서 들을 수 없다. 지난해 초, 음원 시장의 ‘무제한 스트리밍’에 반발해 스스로 음원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월부터 가입자 이용횟수에 따라 창작자에게 사용료를 지급토록 하는 ‘종량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이들도 음원 서비스를 재개하기로 했다. 김종진은 “지난해 대선 전 박근혜 후보를 만나 종량제 도입을 약속받았는데, 이를 지켜준 거죠”라고 말했다.
그런 그들에게 요새 후배 가수 중 누가 음악을 잘 하느냐고 물었다. 예의상 ‘누가 좀 합디다’란 답이 올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사실 음악 잘 하는 친구 별로 못 봤어요. 이 정도는 해야 마에스트로라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음악의 기준이 정말 낮아졌어요. 대중을 너무 함부로 본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아이돌 제작자들도 나름 잘 만들긴 하지만 전통을 수호하지 못했다는 점에선 부족하죠.”(김종진)
그들의 꿈은 무얼까. 김종진은 “실전 뮤지션으로 살다가 무대 위에서 숨을 거두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전태관의 얘기도 비슷했다. “후배들을 가르치며 전수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뮤지션은 무대에 섰을 때 빛이 나는 거죠.”
봄여름가을겨울은 이달 중순 25주년 기념 앨범 ‘그르르릉!(GRRRNG!)’도 낸다. 영국 로큰롤밴드 롤링스톤즈가 5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앨범 ‘GRRR’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롤링스톤즈가 록 뮤지션으로서의 야성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자 고릴라가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모습의 앨범 재킷을 썼던 것처럼, 이들은 호랑이의 모습을 재킷에 담는다. 김종진은 “숲을 싸다니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뮤지션의 야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