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준동] 코리안 특급 계속 이어지길
입력 2013-04-10 18:32
1996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시카고 컵스 경기. ‘바람의 도시(Windy City)’로 불리는 시카고 중심부에 있는 리글리필드는 한겨울이나 다름없이 몹시 추웠다. 당시 중간 계투 요원이었던 다저스의 박찬호는 2회초 팀의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스의 뜻하지 않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얼떨결에 마운드에 오른다.
경제위기 시름 달랜 박찬호
첫 타자인 4번 강타자 새미 소사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박찬호는 이후 시속 150㎞ 후반대의 강속구를 앞세워 4이닝 동안 3안타만 허용하고 7개의 탈삼진을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호투한다. 결국 다저스가 3대 1로 승리해 박찬호는 한국 선수 최초의 메이저리그 승리 투수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 스물한 살 때인 94년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빅리그에 진출한 박찬호가 그해 4월 9일 애틀랜타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무려 2년 만에 맛본 감격적인 승리다. 박찬호는 경기 후 이런 말을 한다. “물론 나에게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이 10단계라면 2단계 정도 올라선 기분이다. 이 작은 기쁨들이 자꾸 쌓여 큰 기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성공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무수히 많은 한국 선수들이 빅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박찬호 이후 총 54명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이 중 승리의 달콤한 열매를 맛 본 투수는 9명에 불과하다.
박찬호는 피츠버그 시절이던 2010년 10월 2일 플로리다전에서 데뷔 14년 만에 통산 124승(98패)째를 기록해 아시아 선수 최다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그 다음으로 많은 승수를 기록한 선수는 현재 국내 프로야구 넥센에서 뛰고 있는 김병현이다. 애리조나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한 김병현은 99년 뉴욕 메츠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뒤 그해 1승 등 2007년까지 통산 54승60패의 빅리그 성적을 남겼다.
KIA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서재응은 2002년 뉴욕 메츠에서 처음 빅리그 마운드에 오른 뒤 통산 28승(40패)으로 세 번째로 많은 승리를 기록했다. 2004년 시애틀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백차승은 16승(18패)을, 2001년 보스턴에서 시작한 김선우는 13승(13패)을 챙겼다. 2002년 애틀랜타에서 데뷔전을 가진 봉중근은 2004년까지 7승(4패)을 기록했고, 98년 보스턴에서 활약한 조진호는 2승(6패),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던 류제국은 1승(3패)만을 남겼다.
류현진이 그 역할 대신 해줘야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이어져오던 한국 투수의 승리 기록은 2010년 10월 박찬호를 끝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2년6개월이 흐른 2013년 4월 8일. 새로운 ‘코리안 특급’의 등장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괴물’로 불리며 올해 초 미국으로 건너간 류현진이다. 그는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한국인 투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단 기간인 5일 만에 승리를 따내는 역사를 새로 썼다.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 유일한 투수라는 점에서 이날 승리는 더욱 값졌다. 비록 박찬호보다 세 살 많은 스물여섯 살에 메이저리그 첫 승을 기록했지만 류현진의 앞날은 밝다.
국민들은 90년대 후반 TV를 통해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거침없는 강속구를 보며 IMF 경제위기의 시름을 달랬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국민들은 이제 류현진이 ‘제2의 코리안 특급’으로 박찬호 역할을 대신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경제와 남북위기로 어수선한 이때에 류현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 한다. 아련한 박찬호의 향수가 류현진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