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꿈 포기않고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인생의 전설
입력 2013-04-10 17:25
“야! 황정민, ‘신세계’ 못 이기면 넌 죽∼어!?” 강우석(53) 감독의 신작 ‘전설의 주먹’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 5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 강 감독이 주인공 황정민에게 엄포를 놓았다. 황정민은 “아∼네네, ‘신세계’ 눌러야죠”라고 받아넘겼다. 황정민은 지난달 28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도 “이제 ‘신세계’는 나랑 관계없다. 지나간 건 중요하지 않다”며 ‘전설의 주먹’을 응원했었다.
‘신세계’ ‘끝과 시작’ 이어 ‘전설의 주먹’ 3편 주역 황정민
영화 제작진과 기자들의 만남인 미디어데이는 주로 500만 또는 7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열리지만 ‘전설의 주먹’은 개봉(10일) 전에 마련됐다. 그만큼 흥행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50일째 롱런 중인 ‘신세계’와 4일 개봉한 ‘끝과 시작’에 이어 ‘전설의 주먹’까지 영화 3편의 주인공을 맡은 황정민(43). 영화계의 인기남인 그를 옆자리에서 밀착 인터뷰했다.
“‘신세계’가 500만(9일 현재 465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전설의 주먹’도 잘 돼야 합니다. 충무로의 흥행 귀재인 강 감독이 계속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요.” 한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3편이 나란히 개봉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그의 파워가 어떠한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았고 감독님을 잘 만난 덕분이죠.”
그러면서 ‘끝과 시작’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촬영 때 민규동 감독과의 인연으로 3년 전 단편으로 찍은 작품이에요. 그런데 상의도 없이 장편으로 늘려 ‘전설의 주먹’에 앞서 기습적으로 개봉해버리니 솔직히 불쾌했어요. 이건 상도덕이 아니잖아요. 강 감독께서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고 하지만 본의 아니게 정말 죄송하죠.”
‘전설의 주먹’은 학창 시절 내로라하는 싸움꾼들이 성인이 된 후 TV쇼 프로그램에서 만나 최고의 파이터를 가리는 이야기다. 황정민은 극 중 국수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다 혼자 키우는 딸을 위해 TV쇼 출연을 결심한 왕년의 복싱꿈나무 임덕규 역을 맡았다. 그는 “주먹을 잘못 날리면 상대방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게 찍었다”고 소개했다.
영화에서 완벽한 복근을 선보이는 황정민은 “역할에 충실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 열심히 했다. 카메라에 잡히는 상체운동만. 하체는 부실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촬영 끝나고 스태프들과 술 한 잔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걸 못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느냐”며 웃었다.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강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촬영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다. 황정민은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고 ‘엄마 아빠의 전설은 뭐였어?’라고 묻길 원했는데 너무 속상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세계’야 제가 욕도 많이 하고 사람도 죽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주먹의 전설’은 착한 캐릭터인데….” 그러자 옆에 있던 강 감독이 “일단 개봉 후 재심의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액션이면 액션, 드라마면 드라마에서 팔색조 연기를 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민기(62) 선생님 덕분이죠. 선생님이 이끄는 극단 학전의 소극장 뮤지컬 ‘의형제’에서 1인9역을 했는데 제 연기의 밑거름이 됐어요. 얼마 전 대학로 학전 그린 극장이 문을 닫았을 때 들렀더니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기운 빠진 모습이더군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황정민 인생에서 전설의 순간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꿈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많을 텐데 어릴 때부터 배우의 꿈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게 저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개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 때문일까, 흥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자정이 가깝도록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황정민은 다소 들떠 있었다. 그는 “새 영화가 걸리면 늘 떨리고 흥분된다”고 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