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눔’의 기적… 이식 받은 장기 첫 재이식 성공
입력 2013-04-09 19:35
18년간 만성 신부전증을 앓아 온 석영숙(57·여·경남 창원)씨는 2011년 초 40대 뇌사자로부터 왼쪽 신장을 이식받았다. 1주일에 세 차례씩 투석을 해야 하는 힘든 투병생활을 끝내고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즐길 새도 없이 가혹한 운명이 그를 찾아왔다. 석씨가 지난달 27일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뇌사에 빠진 것.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하늘이 무너져내렸지만 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석씨의 큰딸 김모(34)씨 역시 만성 신부전으로 2년여 동안 장기이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아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 다른 아픈 이를 위해 고인의 장기를 기꺼이 내놓기로 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베풂을 받았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한테 아낌없이 주고 떠나겠다’는 말을 평소 많이 하셨다”면서 “고인의 뜻을 따르는 게 가족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석씨는 이달 3일 부산백병원에서 장기 적출 수술을 받았고, 2년여간 그의 생명을 지탱해주던 왼쪽 신장은 65세 신부전 환자에게 옮겨져 또 다른 생명줄이 됐다.
국내에서 뇌사자에게서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가 뇌사에 빠져 다른 환자에게 재기증한 사례는 처음이다. 석씨의 장기를 이식받은 수혜자는 현재 매우 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사판정 및 장기이식 과정을 지켜본 보건복지부 지정 한국장기기증원(KODA) 김미라 코디네이터는 9일 “석씨 가족은 누구보다 장기기증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기증을 실천한 숭고한 마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부산백병원 장기이식센터 김영훈 교수는 “세 사람의 면역체계가 얽혀 있어 고난도 검사와 이식 기술이 필요했다”면서 “이번 이식 성공으로 뇌사자 장기이식 범주를 확대할 수 있어 장기기증 활성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2만2978명이다. 하지만 한 해 뇌사자 장기이식을 받는 환자 수는 10%를 조금 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