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창고에서 꿈과 끼 키우라니… 학생 진로체험교육 길을 잃다

입력 2013-04-09 18:26 수정 2013-04-09 22:26


‘조기축구회, 자재창고, 동네식당, 편의점….’ 교육부가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겠다며 선정한 진로체험 협력기관에 선정된 기업이나 단체들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기업과 기관 중에는 선정 사실 자체를 모르는 곳도 적지 않았다. 대상 선정이 급조된 탓이다. 교육부는 부실한 진로체험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지난해(152억원)의 3배로 늘려 잡았다. 한편 서울은 삼성그룹 등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반면 지방에는 슈퍼마켓 등 영세 점포가 많아 직업체험의 양극화도 우려된다.

◇엉터리 진로교육 체험장=국민일보는 교육부가 민주통합당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한 진로체험 협력기관 명단 4344개를 입수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서울은 1470개, 경기 672개, 부산 111개, 인천 153개 등 협력기관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전국적으로 모두 4344개로 나타났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 2월 18일 발표한 ‘진로체험 협력기관 현황’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서울 691개, 경기 970개, 부산 309개, 인천 230개 등 4695개가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달 20일 김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는 수치가 크게 달랐다. 서울은 2배가 넘게 늘어난 반면 경기는 298개가 줄었다. 부산과 인천도 각각 198개, 79개가 감소했다. 지역별로 진로체험 기업과 기관 수가 불과 한 달 만에 큰 폭으로 들쭉날쭉한 것이다.

해당 기업과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명단에 올려놓기도 했다. 명단에 올라 있는 충북의 G농자재마트는 진로체험 대상 기업에 오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해당 업체 사장은 “진로체험 기관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 학생들이 온 적도 없고 교육청이나 교육부로부터 전혀 못 들어본 얘기”라면서 “우리 업체는 그냥 자재창고다. 창고에 농자재를 쌓아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한다. 여기서 아이들이 뭘 배우겠느냐”고 말했다. 충북의 민간단체인 국제로터리 3730지구의 최모 사무국장은 “여기서 진로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업하시는 회원들이 있는데 개별적으로 진로체험을 하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전남 소재 K신문사의 사장은 “종종 인근 학교에서 견학은 오지만 진로체험 교육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진로체험으로 둔갑=교육부는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자동차 공업사 5곳을 협력기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인근 특성화고의 자동차과 학생들이 실습교육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론교육을 하고 현장 업체에 나가 실습교육을 받는다. 강원도 춘천의 미래농업교육원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원 관계자는 “여기는 친환경 농법 등 농민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진로체험 교육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북의 G농장 역시 인근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의 현장실습장이었다. 충북의 디자인 업체인 Y상사도 인근 특성화고 디자인과 학생들이 실습한 기업이었다. 이미 전공이 결정된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다양한 직장체험을 통해 자신의 꿈을 탐색하는 진로체험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진로교육 아니냐”고 해명했다.

◇서울과 지방, “달라도 너무 달라”=체험의 기회는 지역별 차이가 컸다. 서울은 체험기관이 1470개로 경기 672개의 2배가 넘고, 부산 111개에 비해 13배 가까이 된다. 특히 민간기업의 경우 서울은 1204개로 경기 69개, 인천 27개, 대구 1개, 부산 0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 외 다른 지역의 민간기업 수를 모두 합쳐도 서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질적 차이는 비교조차 어렵다. 서울은 삼성·SK 등 대기업 본사와 MOU(양해각서)를 맺고 체험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굵직한 공공기관, 유수의 대학들도 체험기관으로 참여한다. 이에 비해 대전은 주민센터와 장애인·아동·노인 복지센터 등이 체험기관의 50% 가까이 된다. 강원도는 농협이나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 군·시립도서관, 청소년수련관 등이 체험기관 190개 중 70개 이상을 차지한다. 그 외에는 경찰서와 지역 대학이 대부분이다. 전남지역의 경우 직업체험처라고 하기 어려운 특성화고, 향교 심지어 조기축구회도 포함돼 있다. 조기축구회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조기축구회에서는 학생들이 생활체육 지도자를 꿈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의 한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부산도 대도시인데 서울과 격차가 크다. 부산이 이 정도면 다른 지역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지역 격차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교육부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장밋빛 청사진만 남발해 문제를 완화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도경 기자, 전수민 정건희 수습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