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수위 높여가며 불안 조성… 상투적 對南 심리전

입력 2013-04-09 18:20 수정 2013-04-09 22:16


북한이 ‘남한 내 외국인 대피 및 소개’라는 새로운 협박카드로 도발 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엔 대남 민간협력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까지 내세웠다. 북한 각 기관이 강경 기조로 뭉쳐 있음을 과시하며 한반도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대외 위협은 군이 앞장선 가운데 노동당과 주변 기구로 확대되고 있다. ‘핵’이라는 무기로 벼랑 끝 도박을 하고 있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앞 다퉈 충성 맹세를 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을 통해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을 선언한 데 이어 다음날 군 통신선을 끊었다. 8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킨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이어 9일 아태평화위가 나서 외국인 신변 문제를 거론했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핑계는 똑같다. ‘한·미의 전쟁도발’ ‘자주권’ ‘전면전’ 등이다. 아태평화위 대변인 담화에서도 “침략자들의 가증되는 위협으로부터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을 군과 당, 주변 기구 등이 똑같이 반복함으로써 북한 전체가 도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 업무를 담당해온 아태평화위를 위협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세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태평화위는 대남 온건파로 분류되던 김양건 비서가 위원장으로 있고 2000년 금강산 관광 사업 등과 관련해 현대그룹의 협상 파트너를 맡기도 했다. 북한은 전날엔 김 비서에게 직접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메시지를 발표하게 했다. 군부 강경파가 온건 대화파를 조종하고 있는 셈이다. 또 잇단 전쟁 위협과 개성공단 잠정중단 등에도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화에 적극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압박을 계속하자 더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는 관측이다. 우리 정부가 이날 오전 “현 상황에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서 일각의 ‘대화 제의’ 주장을 일축한 데 따른 반발 차원이라는 말도 나온다.

북한이 즐겨 사용하는 ‘살라미 전술’(하나의 카드를 여러 개로 나눠 단계적으로 사용하는 전술)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있다. 현재 대북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다. 하지만 북한은 핵 문제 외에 개성공단을 새로 들고 나왔고, 또다시 외국인 철수 협박 카드를 꺼냈다.

한편으론 개성공단과 외국인 문제를 끄집어내 ‘핵’이라는 문제의 본령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이 그동안 다양한 트집으로 원래 의제는 놔두고 문제를 엉뚱한 곳으로 확대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은 2008년 4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개성공단 내 우리 당국자들을 추방했고, 그 해 12월에는 개성공단과 전혀 상관없는 대북 전단 살포에 시비를 걸어 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제한한 바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매번 이런 식으로 의제를 변화시켜 근본적인 문제를 사라지게 만들려 한다”고 전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7일 “북한이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내용을 한 건씩 터트리고 있는데, 이는 이른바 ‘헤드라인 전략’”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