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부인하지만 ‘신뢰 프로세스’ 수정론 부상

입력 2013-04-09 18:20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또 다시 수정론에 직면했다. 북한이 위협 수위를 높여오던 중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수정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취임 이후 가장 강력하게 북한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러한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비핵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경협, 나아가 국제사회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지원까지도 염두에 둔 정책이다. 엄격한 ‘선(先)사과 후(後)대화’ 원칙으로 남북관계 단절까지 초래했던 이명박정부의 대북 접근법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유연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꾸준히 북한에 대화 의지를 보였다. 공개적으로 ‘공동발전’ ‘유연’ ‘지원’ 등의 단어를 언급했고 “북한이 올바른 길로 나온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발언도 수차례 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북한이 변화를 안 할 것이라고 실망할 게 아니라 북한이 변화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날 박 대통령은 “매우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특히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두고 조목조목 따진 대목이 주목된다. 공단 입주 기업의 피해 보전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출을 거론했고 북한이 국제 규범과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고 기대하던 뉘앙스는 사라지고 북측의 잘못을 질타하기만 한 셈이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도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장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이 틀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북한이 연일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남북 간 긴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도 대화 및 지원의 착수 시점을 예단키 어렵게 하고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무리하면서 북한에 ‘올바른 선택’을 요구한 부분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일말의 실현 의지를 밝힌 것으로 관측된다. 아직 늦지는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위협을 거두고 변화의 길로 나서라는 경고 겸 촉구로 풀이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