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윌리엄 포사이스 “내 공연에는 메시지 없다”
입력 2013-04-09 18:08
세계적인 무용 안무가와 연극 연출가가 나란히 방한했다. ‘현대무용의 전설’로 불리는 미국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와 ‘러시아의 국보급 연출가’ 레프 도진이 그 주인공이다. 고전 레퍼토리만 반복하는 발레계에 포사이스는 혁신적인 안무로 21세기 춤의 방향을 제시한다. 감탄은 있지만 감동은 없는 현대 연극계에 도진의 연극은 감동을 선사한다. 각각 자신의 대표작 ‘헤테로토피아’(낯선, 다양한, 혼종된 공간이라는 의미)와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들고 내한한 두 거장을 만났다.
“나는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 메시지는 없다.”
현재 활동 중인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미국의 윌리엄 포사이스(64)가 대표작 ‘헤테로토피아’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첫 내한이다. 1976년 첫 작품을 발표한 그는 발레의 한계를 뛰어넘은 혁신적인 안무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20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냈으면서도 전통 발레를 거부하고 철학·시각예술·건축·영상 등 실험요소를 결합한 안무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왔다.
10∼14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올려지는 ‘헤테로토피아’는 극장 공간의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대를 전혀 다른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눴다. 객석이 무대 위로 올라와 한 회당 300명만 관람이 가능하다.
그는 9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관객을 속임수로 끌어들이는 공연이다. 얼핏 모형처럼 보이는 한쪽 방에서 콘서트가 벌어진다. 하지만 이 방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사실은 다른 방을 위한 음악이다. 무용수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음악을 지휘한다. 여러 구조가 중첩된다”고 설명했다. “관객이 이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방을 옮겨가야 한다. 공연이 무용이나 연극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구현해내려는 것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포사이스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할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밑에서 바순 플롯 바이올린을 배우며 성장했다. 그는 “클래식 집안이었지만 동시에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이었다. 로큰롤과 펑크 음악도 많이 들었다. 클래식과 팝 음악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흐 음악에서도 펑크가 느껴진다”고 전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부딪히는 발레를 하고 싶다. 음악과 무용수의 몸짓이 다른 무용,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클래식 발레에 대한 일침도 이어졌다. “고전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발레의 미래가 전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을 예로 들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총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발레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무용수들이 하루에 11시간씩 연습할 수 있고 1년에 50회씩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팀도 그렇게 많은 경기를 할 수 없다. 그에게 무용은 기능적인 돈벌이 수단이다. 돈을 벌기 위해 클래식 레퍼토리를 계속한다.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더 이상 1870년대에 살고 있지 않다”고 일갈했다.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