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뚜껑 모아오는 고사리 손들 지구 사랑하는 어른 되겠죠

입력 2013-04-09 17:21


“페트병 본체와 뚜껑은 원료가 다른 거 아시죠? 그래서 재활용통에 넣을 때도 분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재활용 되는 페트병의 뚜껑만 모아도 400만여명에게 백신을 맞출 수 있습니다.”

“페트병 뚜껑 800개를 모으면 1명에게 백신을 맞출 수 있죠. ”

“그런데 그걸 소각하면 6200g이나 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답니다.”

페트병 전문가들이 따로 없다. 지난 3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만난 이양주(34)씨와 정해연(33)씨는 어린이들에게 환경사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 젊은 연극인들이다. 지난해 4월 조용완(30)·김예진(26)씨와 함께 연극을 통한 환경교육을 펼치기 위해 어린이 환경 연극단 ‘풀 음(音)’을 출범시킨 이들은 그해 9월부터 ‘에코 캡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이들이 벌인 첫 사업은 강철로 튼실하게 제작한 에코 캡 수거함을 서울 방학2동 ‘아이세상 어린이집’과 압구정동 윤당 아트홀에 시범 설치한 것. 6개월째 접어선 요즘 이곳에 뚜껑을 넣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이씨는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병뚜껑을 넣을 때마다 자원을 재활용하고 친구를 돕는다는 기쁨을 느낄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환경보호의식이 싹트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니 그 아이들은 지구를 사랑하는 착한 어른이 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병뚜껑이 많이 모이면 재활용수거업체를 통해 현금화, 보건소에 기탁할 계획이란다.

현재 ‘풀 음’은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설치 신청을 받고 있는데, 문제는 제작비. 환경보호를 위한 수거함이어서 플라스틱으로 만들기가 꺼려져 강철로 만들다보니 제작단가가 20만원이나 들었다. 이씨는 “풀 음의 재정상태가 좋지 못해 대량생산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젊은 연극인 4명이 꾸려 가는 극단이니 형편이 좋을 리 없다. 애초에 이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바탕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어린이들에게 환경의식을 심어주자는 데 뜻을 모았고, 지난해 5월 한국사회적기업 진흥원이 주관한 ‘2012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응모해 사업자금을 받았다. 그 자금으로 올1월 분리수거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어린이 환경 뮤지컬 ‘푸름이의 모험’을 무대에 올렸다. 극단의 대표로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씨는 “연극을 보고 나가면서 어린이들이 ‘빈병은 재활용상자에 넣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연극을 통한 교육 효과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에너지재생산, 절약, 하천오염 등 환경을 소재로 한 어린이 환경 연극을 계속 해나겠다고 다짐했다. 정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새 가벼운 주머니 사정은 잊은 채 표정이 밝아졌다. 지난번 연극을 하면서 이들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에 즐거웠다”고 했다. 어린이들에게 환경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연극을 한다고 하자 주위 동료와 선후배들이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 최소의 비용으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는 것. 이씨는 “지난 연극 때도 그랬지만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풀 음’의 연극이나 뮤지컬에는 저소득가정의 어린이를 30∼50% 무료로 초대할 계획”이라고 자랑했다. 또, 페트병 뚜껑을 모아 오는 어린이에게는 입장권을 선물, 재활용의 의미도 일깨워 줄 계획이라고 했다.

정씨는 “병뚜껑을 모아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전하는 환경보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는 전역에 수거함이 설치돼 있다”며 부러워했다. 이씨는 “우리나라도 대기업이나 정부가 나서 전국적인 캠페인을 펼쳤으면 좋겠다”면서 우리의 에코 캡 프로젝트를 따라 하는 이들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