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한국조폐공사 24시

입력 2013-04-09 17:21 수정 2013-04-09 17:48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난 주말 한국조폐공사를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전에 출입 신청하고 취재허가를 받았지만 보안이 생명인 위·변조 방지기업 조폐공사에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화폐를 흔히 국가경제의 혈액으로 비유한다. 화폐를 생산하는 한국조폐공사(KOMSCO)는 국가기관 중 핵심인 ‘가’급 보안지역이다. 과거엔 군인이, 지금은 실탄을 소지한 청원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돈만 찍어내는 곳이 아니었다. 주민등록증, 전자여권, 공무원증 외에 우표, 상품권도 만들고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도 제작한다. 생산하는 제품이 무려 570여종이나 된다.

조폐공사에 근무하는 직원은 신분증 외에도 지문인식시스템에 등록되어 사무실과 공장을 이동할 때 엄격히 통제된다. 심지어 조퇴를 하려 해도 허가를 받고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취재를 하는 기자도 청원경찰, 보안담당자, 홍보실과 담당업무 직원 4명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 편히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장감이 내내 이어졌다.

은행권 제조공정은 복잡하고 수많은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 중에 보안요소가 22개 삽입된다. 형광잉크, 색변환, 은화, 미세문자 등 16요소는 위조지폐방지를 위해 공개되었고 비공개 요소도 6개가 있다.

은행권의 평균 유통 수명은 1만원권이 100개월, 1천원권이 40개월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았지만 5만원권은 훨씬 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표, 상품권 같은 일회성 유가증권은 나무 펄프를 재료로 만들지만 지폐는 목화를 원료로 만들어 유통 수명을 늘린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종이돈이라 부르지만 섬유돈이 더 맞는 표현이다.

한국조폐공사는 원재료에서 최종 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세계 4대 종합조폐기관이다. 그러나 과거 철밥통으로 불렸던 조폐공사가 고액권의 등장과 디지털 신용경제의 발달에 따라 매출이 급감했다. 은행권 발주량이 2007년 20억장이었으나 지난해는 5억5000만장에 불과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조폐공사는 ‘도전·변화·혁신’을 구호로 국내시장에만 안주하지 않고 세계 보안시장에 적극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40여개국에 은행권 용지와 주화, 특수잉크 등 원재료 위주로 수출해 왔으나 지난해 남미 페루 은행권 50누에보솔 3억500만장을 입찰에 성공했고 중동 및 동남아 국가에도 해외 업무팀을 보강해 수주를 위해 뛰고 있다. 해외 매출도 2012년 428억원으로 전년 대비 3.3배 증가했고 지난해 수주 성과는 629억원으로 전년보다 2배 늘었다.

한국조폐공사 윤영대 사장은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과 시장개척을 통해 공기업 업무를 ‘전통사업’에서 ‘개척형사업’으로 전환시키고 글로벌 경영으로 ‘화폐 한류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글·사진 김태형 선임기자 kim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