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철의 여인

입력 2013-04-09 20:02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있으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별명은 ‘철나비’다. 이멜다는 한 해에만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15개국을 순방하며 세계 정상들을 만났고, 필리핀의 대 소련, 대 중공 창구로서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캐서린 엘리슨은 1988년 출간된 ‘필리핀의 철나비 이멜다’에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필리핀 내 회교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하지 않도록 마르코스가 부인 이멜다를 이용하는 미인계를 썼다고 전하기도 했다. 수천 켤레의 구두를 사 모으며 사치벽으로 유명했던 이멜다는 “말라카낭궁에서는 마르코스보다 나를 더 무서워한다”며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1997년 빌 클린턴 정부에서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티타늄의 여인’으로 불렸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자 항의 표시로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다녔고, 북한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독수리와 성조기 브로치로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외교 무대에서 매파로 분류되는 그는 나토 확대,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며 맹장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의 원조는 노동·외무 장관을 거쳐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이스라엘 4대 총리를 역임한 골다 메이어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우리는 자비를 구걸하는 처지에서 영원히 벗어났다”며 교황 앞에서도 당당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사살하자 현장에 파견된 모사드 요원들에게 ‘보복작전’을 지시했다. 12년 동안 백혈병을 숨긴 채 일을 놓지 않았던 여장부이기도 했다.

8일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소련의 침략 야욕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 뒤 소련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처는 1979년 보수당 당수로서 첫 여성 총리가 되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에 들어서기 전 다음과 같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각오를 다졌다.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 심게 하시고,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심게 하시고,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시고,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심게 하소서.” 대처를 롤 모델로 삼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