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는 박근혜 롤모델

입력 2013-04-09 05:22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별명은 ‘티나(Tina)’였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작은 정부와 자유 시장을 옹호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고 발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티나는 이 발언의 약자다. 대처 전 총리는 연설문 초안에 ‘아마(maybe)’라는 단어가 있으면 여지없이 지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철의여인’ 대처는 8일 세상을 떠났지만 공격성, 카리스마, 확고한 자기주장, 냉전의 상징 등 온갖 수식어로 표현되는 그의 삶은 두고 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식료품가게 딸로 태어난 대처는 1943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화학과 법학을 전공했다. 보수적 성향의 대처는 당시 진보가 우세인 대학가에서 학생회 활동은 할 수 없었고, 소수 인원이 활동하는 옥스퍼드 보수협회에서 활동했다. 1951년 결혼한 뒤 정계에 진출하려 했으나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선거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보수당 선거 운동을 도운 결과 1959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대처는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늪에 빠진 1970년대 ‘영국병’을 치료하고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킨 대표적 보수 정치인이다. 당시 영국은 세금은 많고, 일자리는 없으며, 인플레이션은 15%에 육박했다.

대처는 1979년 총선에서 감세 정책과 법질서 회복을 내세우며 승리했다. 20세기 들어 처음 총선 3연패를 기록했다. 총리 취임 첫해에 국영기업 민영화에 착수하고 노조 활동을 규제하는 입법에 나섰다. 1981년부터 정부의 금리 통제를 중지하고,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정부의 주택구입 보조비를 폐지하며, 고등 교육 지원금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처는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기로 예정됐다가 학내 반발로 무산됐다.

대처 정책은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1980년대 초에는 실업률과 무주택자 비율이 증가해 시민 반발이 커졌다. 81년 여름에는 런던과 리버풀의 빈민가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 “불만의 겨울이 끝나나 했더니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1984년 전국적인 탄광 파업이 일어나자 대처 정부가 174개의 국영 탄광 중 20곳을 폐업하고 2만 명의 탄광 노동자를 해고했다. ‘철의연인’이란 별명은 이때 붙여졌다.

대처는 외교·안보에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친미 외교노선을 유지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냉전시대를 이끌며 반공에 앞장서 두 사람은 ‘정치적 연인’으로 불렸다.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아르헨티나가 무력 점령하자 대처는 외교적 타협 주장을 일축하고 1982년 2월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했다. 아르헨티나는 단 두 달 만에 패했다.

그러나 대처의 인기는 경제 성장과 함께 올라갔다 내리막길을 탔다. 1988년 5.2%까지 올라간 성장률은 1990년 0.8%로 떨어졌고, 대처의 장기 집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친기업 정책을 펴면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며, 고용이 증가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믿음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1990년 유럽통합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이 빌미가 돼 당 지도부의 반발을 샀으며 그해 11월 보수당 당수 1차 경선에서 실패했다. 대처는 후계자인 존 메이저를 내세우며 사임했다. 이듬해 5월 정계를 완전히 떠나 대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대처는 현재까지도 유일한 영국의 여성 총리다.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며 대처를 무시하는 남성 의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여느 정치인과 달리 유머감각이 없고, 필요한 말만 했다. 과학도 출신답게 연설에서 늘 통계를 활용하며 청중들의 신뢰를 샀다. 이러한 영향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대처에게 대들 정치인은 사실상 사라졌다.

“요란하게 소리나 지르며 우는 것은 수탉이지만 알을 낳는 것은 암탉이다.” 대처가 정치인으로서 여성이 가진 핸디캡을 극복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총리 재임 11년간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순간마다 핸드백을 팔에 걸고 나타난 것으로 유명하다. 각료 회의 때 탁자 위에 핸드백을 올려놓는 일도 더러 있었다. 각료들을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을 일컬어 ‘핸드배깅(handbagg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으며, 장관들을 겁주는 가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처 전 총리가 핸드백으로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풍자만화도 등장했다. 대처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필요할 말만 하는 정치인, 과학도 출신이라는 점이 닮았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